박지선
2005.7.20 - 2005.7.26 갤러리 스타일 잔다리
자연으로 사유思惟하기
글 홍성희 _ (재)세계도자기엑스포 도자연구팀 연구원
자연을 인간에 대립하는 관계로 바라보며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서구의 정신과는 달리 한국인들은 예로부터 자연과 인간을 구별하지 않고 그 속에서 동화되기를 염원하며 자연에 순응하고자 하는 자연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박지선의 전시는 여성으로서 흙으로 자연을 사유하는 법을 알려준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감성으로 작업하는 작가는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탐닉과 사유를 거듭하며 자신과 부합되는 하나의 이미지를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도 전전긍긍한다.
박지선의 작품은 지난 전시들에서 보여준 세심한 페인팅 기법을 위주로 하되 형태와 포름을 다양화하고 평면이미지에서 벗어나 입체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려는 진보된 시도를 보여준다.
그리 높지 않으면서 아래가 좁고 가파르게 위로 치켜오르는 기형은 정점에 올려진 식물이미지 위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버섯, 새싹, 도토리, 마늘 등 여성으로서 접하는 잡다한 식물오브제들은 이제 주방을 벗어나 그녀의 작품 위에서 형상으로 남았다. 이렇듯 박지선은 자연과 기형의 선 사이에서 형성되는 묘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그녀만의 미감을 작품에 이입한다. 둥글지만 결코 무디지 않은 그녀의 작품에 긴장감을 더하는 것은 얕은 백자 유면釉面 속에서 홀연히 피어오르는 희미한 청색의 기운이다. 빛이 강의 수면을 미끄러져 내리듯 유유한 청색의 기운은 서늘하되 결코 차갑지 않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박지선의 작품들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하얀 원반작품들이다.
지금까지 박지선의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느껴오던 정적인 이미지는 이 전시를 통해 보다 확장되었다. 그간 화려하게 기면을 채우던 새, 나비, 꽃들은 본디 색을 덜어내고 그 형상, 그 관계 그대로 하얀 평면 위에서 교감을 나눈다. 그곳에는 하늘거리는 바람도 멈추고 나풀거리던 벌과 나비의 날갯짓도 멈추었다. 오로지 꽃과 잎사귀의 오르고 내림 사이에서 홀연히 존재하는 그림자는 꽃과 꽃 사이, 꽃과 잎 사이를 넘나들며 사물의 존재와 관계를 더욱 부각시킨다. 홀연한 하얀 이미지만이 남은 원반들은 자연과 합일된 조용한 그녀만의 세계에서 세상사 무거운 짐들을 덜어내고 근원적인 자아의 모습과 마주하려는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닮아있다.
박지선은 이제 자신 주변을 소요하며 접했던 작고 보잘것없는 대상들을 마주하는데서 작품을 출발했다. 내 주변의 꽃, 풀 한 송이에서 생명과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인위적으로 강요된 아름다움을 버린 채 오로지 자연과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내 존재의 본질을 바라본다. 결국 박지선의 작품은 자신의 모든 역사와 업을 자연과 지속적으로 치환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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