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항섭 _ 미술평론가
지난 4월 12일 문경도자기전시관에서 가진 〈2005 문경새재 전국찻사발 공모대전〉 심사는 한국전통 찻사발의 현주소와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난해 처음 시작된 이 행사는 ‘전통 찻사발의 본향’으로 자처하는 문경새재골의 역사적인 도요지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 면면히 흘러내리는 찻사발의 전통을 이어가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백자, 분청사기 등 82개소의 가마터가 지금까지 확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조도공의 도예기법 그대로 발 물레와 재래식 장작가마를 고수하고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더구나 중요무형문화재 백산 김정옥과 전통도예명장 천한봉, 이학천이 문경에 자리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명실공히 1천년에 이르는 도예지로써의 명성을 지켜가고 있는 곳이다.
따라서 이 행사는 문경시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 모두 1,500만원에 달하는 (대상 1명 500만원, 금상 1명 300만원, 은상 2명 각 200만원, 동상 3명 각 100만원)이라는 상금의 규모는 단일 품목 공모전으로서는 파격적이다. 이는 단적으로 말해 문경시가 이 행사에 거는 기대와 의욕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다시 말해 이 행사를 통해 문경새재골이 전통 찻사발의 본향이라는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시키는 한편, 이를 바탕으로 찻사발의 중흥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공모전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점을 처음부터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객관적이면서도 공정한 심사방법을 모색하는 등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어쩌면 필자가 심사위원에 위촉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물론 필자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도예작가들의 개인전 서문을 쓸 기회가 적지 않았고, 개인적으로도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많아 박물관이나 각종 형태의 도자기전을 관람하는 것을 큰 즐거움으로 여기고 있다. 또한 기회가 올 때마다 이웃 일본이나 중국 도자기에 대해서도 안목을 높이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자연스럽게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도자기를 비교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두 이웃 나라에 비해 여러 측면에서 부족한 한국전통도자기에 대해 걱정을 그칠 수 없었다.
이번 공모전 심사위원으로 위촉받고 기대와 걱정이 적지 않았다. 최근 차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지고 차와 관련한 도자기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공급을 담당하는 도예인들의 활동 또한 크게 활성화되고 있는 추세여서 찻사발 공모전도 이러한 시류를 반영하리라 기대했다. 실제로 차와 관련된 행사가 부쩍 많아지고 그때마다 출품되는 다양한 종류의 다기의 수준도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공모전 출품작들은 그 동안 이런 저런 기회를 통해 보아왔던 한국의 전반적인 찻사발에 대한 수준에 비추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기야 공모전이라는 성격으로 보아 이미 나름대로 찻사발에 일가를 이루고 있는 유명작가들은 출품할리 없으니, 대체로 중견도예인 및 신인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해도 대상에 500만원이라는 상금은 적은 액수가 아니다. 따라서 적어도 이 정도의 상금에 필적할 만한 작품들이 응모되어야 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기대가 아니다.
물론 이제 출발단계이므로 궤도에 오르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리란 점은 이해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번 공모전에는 찻사발을 포함하여 크고 작은 다양한 형태의 다기들이 출품되었지만, 전통적인 찻사발이 갖추어야 한 몇 가지 요건마저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듯한 출품작들이 적지 않았다. 형태의 미숙성 및 찻사발로 사용하기 적합하지 못한 크기라든가, 아름답지 못한 유약의 색깔이 특히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었다. 모두 142점이라는 숫자는 찻사발 및 다기를 만들고 있는 전체 도예인의 숫자에 비하면 결코 많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공모전 운영에서는 단순히 지방잔치로서 끝날 수 있는 우려를 떨치기 위해 여러 가지 면에서 노력한 흔적이 여실하다. 무엇보다도 주최측에서는 혹여 문경지방 출신이 대상을 받으면 어쩌나 싶어 걱정할 정도였다. 그만큼 객관적이고 공정한 공모전으로서의 성격을 뚜렷이 부각시키고자 했다. 전문 도예인이 아닌 심사위원을 3명이나 위촉한 사실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찻사발 공모전이라는 특수성에도 불구하고 공모작품의 요강이 불분명했다는 점이다. 찻사발 및 다기가 아니더라도 일반적으로 어떤 형태의 미술 공모전이건 간에 발표한 적이 없는 신작을 출품하는 것은 당연한 요구이다. 즉 찻사발공모전 요강에 ‘찻물을 들였거나’ 또는 어떤 식으로든지 가마에서 갓 구워낸 본래의 형태에 ‘가공한 흔적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빠뜨림으로써 찻물을 들인 공모작들이 적지 않게 출품되었다.
이는 결정적인 문제점이다. 찻물을 들인, 즉 사용한 흔적이 있는 그릇의 경우 가마에서 나온 상태의 원형을 훼손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심사과정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번 공모전에도 찻물을 들인, 즉 사용한 흔적이 뚜렷한 작품들이 수상작에 포함되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그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불공정한 게임인 것이다.
따라서 다음 해 공모전 요강에는 이 점을 명시함으로써 찻물을 들인다던가, 또는 가마에서 나온 상태에서 변형이 있거나 가공이 되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와 함께 보다 많은 도예인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각 매스컴에 효과적인 홍보대책을 마련하여, 문경 <한국전통찻사발축제>를 통해 일반인에게도 이를 널리 알려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야말로 전통찻사발에 대한 인식의 확산과 더불어 찻사발공모전의 인지도를 높여 가는 지름길이다. 인지도가 높아지면 수준 높은 작품들의 출품을 유도할 수 있기에 그렇다.
<문경새재전국찻사발공모대전>은 이제 첫걸음을 떼어놓은 데 지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할 수도, 기대할 수도 없는지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초가 견실해야 한다. 문제점이 드러나면 망설이지 말고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 공모전의 권위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설령 상금이 적더라도 일차적으로 운영상에 잡음이 없음은 물론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가 이루어질 때 공모전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그러다 보면 권위도 생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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