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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화 개인전 2005.3.7 - 2005.3.20 서울 아산병원 갤러리
  • 편집부
  • 등록 2005-04-26 22:3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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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라는 거대담론을 향하여 글 윤두현 _ 독립큐레이터 전동화는 도예뿐만 아니라 회화, 설치 등 다양한 매체medium적 접근을 시도하면서 우주에 대한 사유를 계속해오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에게 각 매체는 단지 사유를 위해 늘 열려 있는 수단으로서 채택될 뿐이다. 이번 전시의 흙을 매체로 하는 도조, 도벽 역시 우주에 대한 관념적 사유를 형상화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선택되었다. 그렇다면 이렇듯 다양한 매체적 접근을 통해 작가가 몰두하고 있는 공간, 즉 우주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가의 우주 공간에 대한 인식은 동양적 사유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즉 우주라는 자연 혹은 본질 앞에서 인간은 한낱 미미한 존재일 뿐이라는 노자와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적 사유와 맞닿아 있다. “조금 아는 것으로 많이 아는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으로 긴 삶을 헤아릴 수 없다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라며 장자는 우주와 인생의 깊은 의미에 대한 사유의 중요성을 이미 2천년 전에 설파했다. 그리고 근대 이후 이성의 우위를 극단적으로 추구해온 서구사상의 한계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서 이와 같은 동양적 사유가 새로이 주목되고 있는 것 역시 엄연한 대세다. 장자가 그와 같은 사유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곧 인간의 조건으로 숙명처럼 지니고 있던 실존적 한계의 껍질을 완전히 벗어 버린 초월적인 삶 혹은 세계의 다름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작가의 비구상적인 작품 성향과 다양한 매체를 통해 개념적인 공간성과 물성을 강조하고, 나아가 절대적 자연으로서의 우주를 형상화하고자 하는 의지는 일말의 개연성을 얻고 있다. 그럼 이 즈음에서 위와 같은 작가적 의지의 결과로서 드러나는 우주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작품에 형상화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할 듯하다. 우선 전동화는 그의 작업에 있어서 물성을 최대한 강조하며, 우주를 결코 이성에 의해 인식, 통제되는 세계가 아니라 오직 하나의 전체로서 세계 혹은 절대성을 지닌 세계로 파악하고 조형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하는 데서 그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하지만 작가의 그와 같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실상 우주라는 공간적 사유를 하나의 작품, 즉 조형적으로 형상화하는 문제에 있어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획득하고 있는가라는 점에서 다소 많은 아쉬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보다 앞서 더 근본적으로 작가가 몰두하고 있는 우주 자체에 대한 사유가 진정 작가만의 독자적인 차별성과 심미성으로 체화되고 있는가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이는 그의 작업을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본질적인 토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작품들에서 우주에 대한 심미적인 사유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이는 결국 「블랙홀」, 「빛」, 「우주정거장」, 「태양계여행」 등의 작품에서 보여지고 있는 것처럼 작가의 접근이 다소 현상적인 차원에 편향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정리하자면, 노자나 장자의 도가적 사유는 “무위자연”이라는 단 한 마디로 압축된다. 하지만 구슬 속에 담긴 은하계처럼, “무위자연”이라는 단 네 글자의 간결명료함 속에는 쉽게 파악될 수 없는 거대한 담론 혹은 세계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주의 삼원한 철리哲理를 얻기 위해 작가의 여정 역시 더 깊고 넓게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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