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백자의 백색미 구현의 여정
이 글은 2004년 2학기 단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도자디자인학과에서 진행된 한국도자사 강의중 근·현대 도자사에 족적을 남긴 작가들에 관한 일대기가 거의 남아있지 않음을 깨닫고, 원로작가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정리 발표한 일부이다. 이 대담은 1세대 작가들에 대한 진솔한 내용이기에 이후 전승 1세대 작가의 연구에 객관적인 자료가 되었으면 한다. - 경기도문화재전문위원 최선일
일 시 : 2004년 11월 26일
장 소 : 한익환 선생의 서울시 한남동 자택
사회자 : 홍미자
참석자 : 강사 최선일 외
단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도자디자인학과 7명
최선일 안녕하세요 선생님. 3년 만에 찾아뵙는군요. 전 요즘 서울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한익환 최선생. 강진에서 언제 올라왔지?
최선일 일년 채 안되었습니다. 7년 동안 강진청자박물관 전시회 때마다 깊은 관심과 도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익환 오늘 무슨 일 때문에 왔지?
홍미자 선생님의 작업 일대기를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한익환 학교에서 도자기 가르치면서 작품에 혼을 집어넣으라고 하지... 그런데 혼이란 것을 작품에 집어넣을 수 있을까? 내가 시집을 하나 냈는데 이름을 붙이다보니 『도자 단상(陶瓷短想)』이라고 했어. 다 그릇 만드는 이야기야. 젊은 아가씨가 이거 한번 읽어봐..
김은미 「도자 단상」
도자기에다
내 영혼을 넣는다고
그 많은 세월을
부셔 깼지만
언제부터인가
흙의 참 맛을 알게 되면서
침묵의 스승
자연을 알게 되었고
자연을 알게 되면서
인간의 길
깨닫게 되었다.
한 잎 잎새와도 같은
도공의 꿈
도자기에다
내 하찮은 영혼을
넣는다는 것이
어느덧
흙의 영혼이
내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한익환 시에서 이야기하듯 흙 그것이 내 몸에 들어오는 것이지 내가 거기에다 넣을 순 없어. 어떻게 고체에 고체를 집어넣어 다 말은 그렇게 하고 있지만 난 반대라고 생각해... 내 고향은 청진이고 제2의 고향은 공부를 한 북간도 연길이야.
여기 나와선 여주가 제3의 고향이지. 집 없이 한 7년 왔다 갔다 했으니까.. 그땐 여주에 큰 공장이 5개 밖에 없었고, 조그만 재래식 가마가 두세 개 있었지.
홍미자 그것이 몇 년도 쯤 입니까?
한익환 종로 5가에 있는 요업시험소에 있다가 부산에 내려가서 한국전쟁을 맞고 서울로 올라와 있다가 처음 나간 곳이 밀양이고, 그 다음에 여주의 여러 공장에서 기술자가 아니라 조합사로 일했지.
홍미자 당시는 어떤 작업을 하셨어요?
한익환 옛날 사발 안은 희고, 밖은 청색인 것을 그때는 청자라고 했어. 영등포에 동광제조사라고 있었지. 그 공장에서 일할 때, 흙이 없으니까, 북한강자락이 올라가는 양수리에 가서 백토 맥을 찾아 사용했지. 그 흙이 막사발 만들기 좋더라고. 포천에 있는 친구한테 그 점토를 가져오라고 해서 백토 칠에 점토 삼(백토 7 : 점토 3)을 섞어 그릇을 만드는데, 백토만 가지고 하면 흰 것이 참 좋았지. 그런데 성형할 수가 없어. 점토를 삼(30%)을 넣어야 하니 아무리 희게 만들려고 해도 힘들어요. 그래도 그 그릇이 참 좋았지.
점토 색이 들어 있는 것이라 철분을 제거해도 그 안의 녹색이 없어지지 않아. 일본에는 점토라도 와목점토가 있고, 이북엔 있었지만 여기엔 없었어. 포천 점토라든가 여주 점토가 똑같은 질인데 그런 걸 섞어 만들었다고. 섞어 만들어 놓으니까 그릇이 되는 건데, 흙이 나쁘니까 막사발이지만 색도 없고. 안은 희고 밖은 녹색으로 내지 참 보기 좋아. 지금도 거기 가면 흙이 있을 거야. 공장에 사발 2만개가 들어가는 가마에다 불 땠는데, 그 공장에 그런 가마가 4군데 정도 있었지.
홍미자 생산량이 엄청 많았겠네요?
한익환 여주 사람들이 찾아와서 데이터를 주었더니 여기저기에서 나오기 시작했어. 한 3년 동안 그 데이터를 모두가 써 먹었어. 흙하고 상관없이 녹색으로 만드니까. 내 나이 40까지 그렇게 객지 생활하면서 살았었지. 1972년경 전에 만든 그림 그린 도자기인데, 쫌 깨져서 전기줄로 엮어, 집 계단에 놔두었더니 손님이 와서 보고 만원 주고 가져가는 거야. 그러면서 마누라와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지.
경기도 광주 산곡에 산곡요를 차려 백자를 만들었어. 그 당시 신세계에 납품을 했는데, 거기선 내가 작품 대주기만 기다리는 거야. 그런데 조선백자와 비교해 보면 그런 맛이 안 나는 거야. 그래서 한 두어 가마만 구운 다음 내가 안 하겠다고 했어, 옛 색을 찾아 한 3개월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런 것이 지금까지 연구하고 있다고…
처음엔 청백자를 내다가 지금은 설백자를 냈는데 대충 나와 그런데 청자는 안 나와 너무 힘들어.
정경선 그럼 계속 청자 작업을 하셨어요?
한익환 한 30년 됐지. 여러 사람들이 요즘 재현하는 청자들이 고려청자 비색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이 어떻게 비색이야?
우리나라 백토는 장석 100에 석회석 5%로만 들어가도 유약이 된다고. 소다 장석을 쓰는건데, 보통 가리 장석을 쓰지. 7% 쓰면 깨끗한 유약이 돼. 느릅나무 재를 쓰는데. 느릅나무 는 바람이 불어도 무거워서 그대로 있지. 옛날엔 간단하게 만들었는지. 색은 일본 흙이 우리 나라 흙을 따라오질 못해. 지금 중국 것도 상당히 희다고, 흙이 다르지 유약은 똑같은 데…
난 옛날에 설백자가 뭔가 했어. 청백자에서 푸른 기를 뺀 것이 설백자라고, 난 지금 전부 설백자 인데 색이 좋으니까 만드는 거야.
도자기를 하면서 바탕이 나쁜 것은 아무리 만들어야 값어치가 없어요. 못생긴 사람이 나가 배우 해봤자 안돼. 코미디를 하면 몰라도, 흙도 양반 흙을 써야지 상놈의 흙을 써선 안돼.
도자기를 빚는데 중요한 것은 태토와 유약이고, 그 다음이 자태, 대개 이것을 모양이라 하지. 흙을 모르니까 몸 형태만 가지고 말하는 거야…
홍미자 선생님 청자와 백자 유약이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세요?
한익환 청자 유약은 같은 백색이라도 푸른빛이 스며 청자색을 띤 색에 나오지. (청자를 보여주며)재래식에서 구웠는데 안 나와서 가스 가마로 다시 구웠어. 이것도 흰색 유약이야. 흙 자체에 있는 철이 묻어 나와 있지.
김지희 1948년경에 도자기를 처음 접하셨다는데 어떤 계기가 있으셨어요?
한익환 부산에 있을 때 노기주씨가 대한도기를 맡아 운영했는데, 그릇을 만들어 보라는 권유로 그 분 덕에 도자기를 하게 되었지. 그 후 중대교수 문병렬씨의 소개로 서울 초자 연구실에서 2년 동안 초자 색소 배합을 배우고 다시 고등 기술 양성 상공부에서 10개월 동안 했어. 한국전쟁때 부산에 있다가 다시 올라와서 연구소에 있다가 32살 밀양 공장에서 일했는데 뭘 알겠어. 그 때는 일본에 갔다 온 사람 빼고 기술자가 없었으니 불 때는 것은 전부 일본사람들이 했어.
홍미자 일제 침략기에 청자를 잘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한익환 목포가마가 있었는데 일본사람들이 만들었어. 난 보진 못했지만.
김주혜 여러 요장이 있었던데요?
한익환 당시 황인춘씨가 있었어… 최순우 관장님이 살아계셨으면 설명해주실 수 있을 텐데.
곽선옥 언제부터 마음에 드는 백자가 제작되었습니까?
한익환 1970년부터 경기도 광주에서 작업하다가 1976년 땅을 사서 용인으로 옮겼어. 그때부터 흙이 좋으니까 잘 나왔지. 그때 초벌해 놓고 그림 그리는 소정 변관식 선생이 그림 그려 넣으려고 했는데 돌아가셨지..
김지희 70년대 전시회도록은 도서관에도 비치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전에 작업하신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전시도록이 있으세요? 있으시면 보여주실 수 있나요?
한익환 그런 자료가 찾아보면 어딘가 있을텐데.
홍미자 선생님은 첫 번째도 흙이고, 둘째, 셋째도 흙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용인에 <익요>를 만드신 것도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한익환 경기도 광주에 가마를 차려놓고 백자를 하는데, 나와 똑같은 백자가 나오는 것은 싫으니까 내 광산은 내가 가져야 했거든. 영등포 동광에 있을 때 친구가 찾아와서 참 좋은 흙이 있다고 한 차 가져다 놓았어. 기존의 흙에 20% 정도 그 흙을 넣으니까 다른 곳 도자기보다 좋단 말이야. 그 산에 도석이 나오는데 그것을 인천으로 가져가 빻아서 써보니 참 좋더라고. 지금 백토가 안성백토인데, 용인하고 접경 지역이지. 백토는 다 파가고 돌만 쌓여 있었는데, 하동백토는 가루이고, 다른 지역 백토는 가루하고 백토가 섞여 나와. 안성백토는 돌만 나오지만, 광산을 사서 보니 돌덩이뿐인데 한 두 트럭 되겠더라고 돌을 빻아서 그릇 만드니 제품이 참 좋았어.
곽선옥 그럼 요즘도 용인에서 화목으로 작업하세요?
한익환 아니야, 석유를 때서 옛 맛을 내고 있어. 백자는 되는데. 한국 사람들 티가 하나라도 있으면 싫어해. 주근깨가 있고 그런 것이 참 멋있는데 그 맛을 모르고 깨끗한 것만 찾지. 갑발에 넣어 구우면 깨끗하다고, 청자는 1200도 아래서 익으니까 괜찮은데, 요즘 1300도에 구워내는 청자는 가짜라고. 1180~1230도 파편에 유약 발라 구워 봐 전부 녹아서 반질반질해지지. 그게 중요해.
최선일 가스가마와 화목가마에서 구운 작품이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한익환 진사를 넣어 보면 알 수 있어, 산화동이 오름 가마에서는 안 번진다고.
최선일 차이가 있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작업하시는 분들께 여쭤보면 차이가 없다고 하던데..
한익환 (옛날 오름 가마에서 구운 진사를 보여 주며) 기름과 가스가마에서는 진사가 번져 있어 불 때문이야.
김지희 선생님. 이렇게 30년 동안 백자색을 찾기 위해 연구를 하셨는데, 가장 좋은 백자는 무엇입니까?
한익환 (작품을 보여주면서)이것이 청백자, 유백자, 설백자야. 나로선 이 이상은 낼 수 없어.
김주혜 청백자가 더 흰색이 강하게 나지 않나요?
한익환 난 설명하기 힘들어. 설백자는 흰색보다는 덥덥한 맛이 나고, 부잣집 마님 같은 맛이고, 청백자는 옛날의 푸른 치마저고리 같아.
정경선 조선백자는 이런 색이 나지 않잖아요?
한익환 그건 따라오지 못해요. 맨 주근깨고 이런 색이 아니고 멀리 보면 참 좋아. 기계에서 빻아서 정제된 흙이라 그렇지 배합은 비슷할거야.
김주혜 일본인이 선생님 작품을 너무 좋아해서 많이 찾아온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에 자주 가세요?
한익환 오사카 한큐백화점版急畵廊에서 국립나라박물관 학예과장 소개로 전시했지. 지금도 예우를 갖추고 찾아오곤 해요.
김주혜 그럼 일본에서 전시회하실 계획은 있으신가요?
한익환 1988년과 1990년 한큐백화점에서 두 번, 1992년 동경역전 한 번 했지. 한큐백화점은 국외인들에게 차별이 심해서 한국 작가의 작품은 받아주지 않는데, 그곳에서 나를 초청 한 거야.
이젠 힘이 딸려 일본 가서 전시회하지 않을 생각이야. 멀리가지 않고 여기서 작품 만들어 ‘익’이라고 쓰면 됐지.
최선일 요즘도 잘못된 작품 깨지 않으세요? 전에 찾아뵐 때 제일 인상 깊었던 것이 잘못 나온 작품조차 포용하시려는 모습이었습니다.
한익환 왜 깨? 장독 뚜껑이 깨지면 붙여서 철사로 묶어서 썼는데, 옛날엔 다 사용했어. 일본에서는 이름을 넣어서 만들기 때문에 운이 없어진다고 깬 것이지 우린 그런 것이 없으니 깰 필요가 없었지.
김은미 한국에서 전시회 할 계획은 없으신가요?
한익환 청자가 막바지에 들어가면.
김은미 저는 백자만 하시는지 알았는데요?
한익환 청자를 얼마나 심하게 하는데..
장군보 일본에선 조선시대 막사발을 가치 있다고 말하는데, 선생님 생각은 어떤가요?
한익환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어. 그것이 옛날 상놈 밥그릇인데, 그것을 승화시킨 것인데, 다른 나라 가서는 천대받지 않는거야. 도자기는 바탕을 맛이라 하고, 모양새는 멋이라고 해. 바탕은 깨끗하고 담백하고 고귀로와야 돼. 바탕이 좋으면 기형들이 이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야.
정경선 선생님 작품의 기형들은 어떻게 보면 이쁘지 않은 것도 있는데?
한익환 일부러 잘 만들어야겠다고 생각 안해. 만들다 보면 이런저런 것도 있고, 불에 찌그러진 것도 있지. 내 입장을 합리화시키는지는 몰라도 바탕이 좋으면 어설퍼도 멋이 난다 이거야. 바탕이 나쁜 흙에 맛이 나는 것도 한두 가지는 있어, 하지만 맞추기가 참 힘들어. 좋은 흙은 바탕이 좋으니 형태가 나빠도 괜찮아.
곽선옥 조합하는 방식을 보니 선생님께서 백자 연구를 3년이면 되겠지 했는데, 30년이 지났다는 말이 이해가 갑니다. 일일이 실험을 하려면 시험 가마를 두고 하시나요?
한익환 우리 조선 백자는 1240~1260도. 단가마에서 땔 때는 1280~ 1320도까지 비슷하게 나와. 1180도 환원 불에서 나오는 청자는 반광이고 광택이 무광에서도 투명해야 하지. 무광인데 밑의 상감이 우러나와 비춰지는 것이 고려자기의 특색인데, 1300도의 불을 때니 제대로 된 청자가 나오지 않는 거야.
홍미자 마지막으로 저희처럼 도예를 배우는 후학들에게 도자기를 만들 때 가져야할 마음가짐이나 자세에 대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익환 흙을 모르면 그 이상은 못 한다는거야. 흙으로 배합을 하다보면 뭔가 나와. 내 흙을 만들어야만 진정한 도예가가 아닐까. 결국 내 흙이 없으면 진다고 나는 생각해. 경상도 어느 학생이 백자로 조그만 컵을 만들었는데, 학교에서 흙을 가르치지 않으니 우리 흙도 아니고 중국 흙을 주고 만들라고 하더군. 여러분도 일년하면 잘 할 수 있어 너무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 라고. 난 50년 동안 저울대를 놓지 않고 있어. 거기에 취미 붙여 작품하면서 답답해지면 나가서 저울대를 잡아. 그리고 옛것을 알고 현대 것을 알아야지. 옛것을 모르고 현대 것은 하는 사람은 거기까지 밖에 못해. 우리나라 것을 알고, 우리나라 도자기는 세계의 극極이야. 외국 것만 좋다고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야. 아무렇게나 만든 것을 예술이라 하지만, 도예 왕국에서 도예하는 사람이면 구라파(유럽)나 일본 어느 나라에도 지면되나. 조형을 아무리 말해도 뭐 쓸 수 있는 물건을 더 좋고 멋있게 만들어 보라고.
홍미자 선생님 장장 3시간 동안 반평생의 이야기를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고 좋은 가르침 부탁드립니다.
한익환 잠깐 자네 이름이 뭐야?
홍미자 홍미자입니다.
한익환 잠깐 글 한 장 써 줄께.
(종이에 “유채釉埰의 맛은 담백淡白하면서 그 품격品格은 고귀高貴로워야 하고, 자태姿態의 멋은 좀 모자람이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어야 한다”를 써주시며) 자 이런 마음으로 도자기를 만들어.
홍미자 감사드려요. 이제까지 전승은 어딘지 고리타분한 느낌을 많이 가졌었는데, 선생님의 말씀 들으면서 전통의 참다운 계승에 대하여 많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한익환 몇 명이 왔지?
곽선옥 선생님과 학생 모두 8명입니다.
한익환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좋아 온 사람들에게 전에 출간한 시집하나씩 줄께.
곽선옥 감사합니다.
한익환 (일일이 학생들의 이름을 책에 적어주시면서) 반평생 동안 도자기를 만들며 생각한 내용이니까. 작업하면서 읽어봐.
최선일 선생님 이제 돌아가 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한익환 언제나 열심히 하고.
홍미자 감사합니다.
대담 모습
위 청자음각격자문도판 아래 백자진사월매문호 세부
후학에게 주신 글
백자초기형주병
소정 한익환 선생
백자달항아리
사회·발췌자 : 홍 미 자
상지대학교 공예과 졸업
단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도자디자인학과 재학중
(주)지노스 인터내셔날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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