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06년 한국도예계를 돌아본다 -도예전시·행사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
글 윤두현 _ 영은미술관 큐레이터
올해로 일주년이 된 청계천 복원은 영화로 치면 공전의 흥행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좋을 만큼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그렇지만 자연환경적인 측면에서 볼 때 청계천 복원을 과연 성공적이라 볼 수 있을까? 꼭 그렇지는 않을 듯하다. 왜냐면 자연이란 인위적으로 조정하고 배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청계천 복원은 개발지향정책의 또 다른 결과물의 하나일 뿐이다. 물론 청계천 복원의 성공여부를 따지고자 이러한 얘기를 꺼낸 것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것은 청계천 복원의 흥행이 우리시대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청계천 복원의 본질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보내고 있는 성원이 그 증거다. 생활의 편리와 기능성만을 지향하던 물질주의, 속도주의에 대한 현대인들의 피로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가 청계천 복원이라는 하나의 사건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자연과 문화라는 삶의 내적 충만을 뜨겁게 갈구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갈구는 도예계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도예전시와 행사의 양적팽창과 다변화는 이를 반증하는 좋은 예다. 본 지면을 통해서는 먼저 올 한해 도예계에 있었던 행사 및 기획전시들을 돌아보며 그러한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반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올 한해 열린 도예행사 및 전시를 돌아보자면, 이전과 달리 양적인 증가와 함께 내용 역시 다양하게 변화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올해 열린 행사와 전시는 크게 도자기축제 그리고 대형 박람회와 전시 등으로 구분하여 볼 수 있을 듯하다. 먼저 광주왕실도자기축제, 강진청자문화제, 무안분청문화제, 계룡산분청사기축제, 김해도자기축제, 문경찻사발축제 등을 비롯해 많은 지역축제들이 전국적으로 개최되었다. 나아가 앞으로도 도자기축제는 더 늘어날 추세다. 수도권에서는 ‘토야테이블웨어페스티벌’, ‘국제공예박람회’, ‘국제차·공예박람회’ 등의 대형전시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끌었다. 이 외에도 ‘한·일청년작가교류전’, ‘구본창 사진전’, ‘야나기 무네요시가 발견한 조선 그리고 일본전’, ‘흙의 시나위전’, ‘건축도자를 향한 두 번째 발걸음’, ‘도자향 서권기전’ 등 중소형 규모의 기획전시들도 풍성하게 열렸다.
우선 ‘테이블웨어전’, ‘공예박람회’, ‘차·공예 박람회’ 등 박람회 성격의 대형전시 증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전의 도예전시가 감상, 체험 위주의 소극적 차원에 주로 머물렀다면 이제는 쓰임이라는 일상적 장으로의 본격적 확산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의 이면에는 우리 생활을 점령하고 있는 화학제품의 부작용 등이 부각되면서 자연친화적 용기에 대한 보다 절실한 필요도 반영되어 있다. 또한 이같은 전시행사들을 통해 작가들은 보다 실질적으로 일반인들의 취향과 기호에 대한 정보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전시들에 참여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것을 요구하는지 알게 되었다는 한 공모전 수상 작가의 소감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정보교환은 쌍방의 의견 차이를 줄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이로써 보기는 좋으나 막상 쓰기는 불편하다는 치명적 문제들이 점차 해소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도자기가 좋으니 도자기를 써야한다고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 친절한 배려와 수용이 필요하다. 귀 기울임이 필요한 것이다.
지역축제들은 별다른 준비와 차별성 없이 반복적으로 치러지는 도자기축제에서 벗어나 치밀하고도 체계적인 정책지원을 통해 차별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강진청자문화제는 주목할 만하다. 단국대학교와 연계한 도예연구소 건립, 국제도예작가워크숍 유치, 파리 7대학 청자정원 조성 등 행사 안과 밖에서 다양한 정책적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내실을 더해가고 있는 것은 다른 지역축제 관계자들이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강진청자문화제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 정책적 노력은 축제의 성공을 위한 절대적 요건이다. 농사꾼의 피나는 노력 없이 단지 흙이 기름지고 기후가 좋은 것만으로는 풍년이 도래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람회, 지역축제 등은 주로 도예문화의 대중적 저변확대를 꾀하는 도예 전시행사다. 그렇다고 했을 때 미술관과 갤러리를 중심으로 개최되는 중소형 기획전시들은 대중적 저변 확대와 함께 도예의 내적 심화와 다변화를 꾀함으로서 미학적 토대를 두텁게 한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영국, 미국, 일본 등 11개 해외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백자유물들을 사진에 담아낸 ‘구본창 사진전’은 눈에 띄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조선백자의 미를 재해석하여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사진작품들은 조선백자 그 자체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조선, 나아가 한국적 미학의 원형을 대상으로 함으로써 새로운 미적 차원을 이끌어 낸 것으로 평가되었다. 도자기에 대한 장르를 넘어선 다채로운 미학적 접근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을 미학적 차원에서 이끌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야나기 무네요시가 여전히 언급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와 같다. 그렇지만 정작 일민미술관의 ‘야나기 무네요시…전’의 경우는 야나기 무네요시 공예미학의 정수를 보여주지 못한 채 소장품 위주의 추념 혹은 기념전 정도에 머물고만 듯 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아쉽다. 유사한 맥락에서 도예계 자체에서 기획된 ‘한·일청년작가교류전’을 비롯한 여타 테마 기획전들 역시 공허하다. 현대도예의 미학적 접근에 따른 체계적 정립이 전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도예가 어디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또 그러한 행보들이 어떤 의미와 방향성을 내재하고 있는지 밝혀내고 그 위상을 조명하지 못한다면 기획전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전시기획이란 시대와 흐름을 읽는 것이다. 기획자 고유의 해석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별다른 의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동어반복과 다르지 않다. 다양한 접근과 해석은 자연스럽게 전시된 작품들의 위상을 드러낸다. 필자의 개인적 소견으로 도예계에 있어 큐레이터, 비평가 등 전문가의 부재는 뼈아프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객관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작 심각한 것은 이러한 전문가의 부재를 심각한 것으로 인식하지 않는 데 있다. 이 같은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현대도예의 탈출구를 쉽게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도예문화의 대중적 저변확대와 미학적 심화
지금까지 2006년 한 해의 행사 및 기획전시들을 돌아보았다. 이를 정리하면 2007년을 포함해 앞으로의 도예계는 대중적 저변확대와 미학적 심화 내지 다변화라는 두 가지의 숙제를 당면하고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이 시대적 패러다임의 변화는 도예의 앞날에 분명히 순풍이 되어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우선 도예문화의 대중적 저변확대를 위해서는 주변적인 문화를 고양하기 위한 노력 또한 필요하다. 만약 일본에서 차 문화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 했다면 과연 한국에서 밥그릇으로 쓰던 막사발이 이도다완으로 불리며 일본의 국보로 지정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의 막사발과 일본의 이도다완의 가치적 차이는 결국 주변 문화를 어떻게 접목하고 고양시켰는가의 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똑같은 기물이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되는 힘이 바로 거기에 있다. 도자기의 예술적 가치를 알고, 또 생활 속에서 써야 한다라는 직접적이며 일차적인 장려와 광고는 이제 실효성이 만료되었다. 도예문화를 실질적으로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잠재한 문화적 욕구를 밖으로 이끌어 내고 이의 물꼬를 터줘야 한다.
다음으로 미학적 심화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대도예의 다채로운 미적 담론을 제공할 수 있는 전문가들을 양성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먼저 대학의 교육체계가 바뀌어야 한다. 체계적 교육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사지로 내몰 듯 졸업생만을 배출하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해봐야 한다. 전시는 작가, 기획자, 평론가, 관람객 등이 유기적으로 연계되었을 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다. 어느 한 부분이 부재한다면 제대로 된 결실을 맺을 수 없다. 나아가 전시기획은 요리다. 동일한 재료라도 이를 어떻게 조화시키고 요리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한 가지 재료의 참맛을 바르게 혹은 다양하게 이끌어내는 것이 곧 좋은 요리의 요건이듯 한 작품의 참맛을 다채롭게 이끌어 내주는 것이 곧 좋은 전시기획이다.
이와 함께 작가들 스스로 전시기획이나, 평론을 무의식중에 요식행위 정도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돌이켜 봐야 한다. 작가가 작업실에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듯 전시기획자나, 평론가들 역시 심혈을 기울인다. 전시의 전체적 맥락을 잡기 위해 또는 적절한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밤을 지세우기도 하는 것이다. 전시기획자라는 명함을 갖고 있는 필자로서도 시간이 갈수록 전시기획의 어려움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전시를 기획하기는 쉽지만 좋은 전시를 기획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평생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하나의 작품을 위해 헌신하듯이 기획자나 평론가 또한 좋은 전시, 좋은 글 한 편을 위해 헌신한다. 요컨대 각각의 위치와 역할에 따른 전문성을 인정하고 응원하자는 것이다. 결국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 열쇠는 내부의 변화를 어떻게 촉발할 것인지에 있다.
끝으로, 2007년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의 전시예산이 애
초의 150억에서 30억으로 1/5이나 삭감되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는 비엔날레가 차지하는 비중과 상징성을 생각할 때 모처럼 순풍을 맞이하려는 도예계에 찬물을 끼얹는 것일 수 있다. 나아가 경기도가 어떤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거의 일방적으로 결정, 통보했다면 그 문제의 심각성은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비판에 앞서 다른 한 편으로 그간의 예산과 규모에 견줘 얼마만큼 내적 결실을 거뒀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도자비엔날레는 타 비엔날레와 달리 국내 도예의 앞서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실효적인 돌파구가 되어야 한다는 상대적 기대와 의무가 더 크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비엔날레가 그러한 기대에 못 미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반전의 노력이 절실하다.
<사진>
한국공예문화진흥원 주최로 열린 <국제공예박람회>
제11회 강진청자문화제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구본창 사진전>
박여숙화랑에서 열린 <도자향 서권기>전
필자 윤두현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했다. 박여숙화랑 큐레이터를 역임하고 현재 영은미술관 책임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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