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도자의 대중화·세계화(1)
글 이은실 _ 조선관요박물관 학예연구팀 연구원
우리의 전통도자
도자기를 배우는 학생들은 물론 작가들 가운데서도 ‘전통도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답변할 수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전통도자는 과거 옛 시대의 도자유물과 기법과 형식을 재현·복원·계승한 것, 전통적 분위기를 보이는 창의적 현대도자를 포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그동안 조선관요박물관에서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공모전을 비롯한 각종 전통도자 관련 전시를 진행하면서 자연스레 우리 전통도자와 접하고 이를 신중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 전통도자작가들이 전시나 공모전에 출품하는 작품성향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지는데, 첫 번째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기법과 형식을 그대로, 혹은 창의적으로 재현·복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완전히 현대적인 감각으로 창작하면서도 한국적인 분위기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를 굳이 정의하자면 전자는 과거 도자의 기법, 재료, 형식을 충실히 이어간다는 점에서 ‘전승도자’로 후자는 옛 시대의 문화, 양식 또는 정신을 갖고 표현한 오늘날의 도자기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좁은 의미) ‘전통도자’로 정의할 수 있겠다.
최근 제작경향은 점차 재현·복원의 전승도자에서 창작이 가미된 협의의 전통도자로 자연스럽게 변화하고 있다. 즉 우수한 도자역사의 재현·복원에서 오늘날 우리시대에 맞는 창조적 작업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과거 우리 도예가들이 좋은 것을 모방하고 변화, 재창조해 찬란하고 독창적인 우리 전통도자문화를 이룩했듯이 이는 당연한 결과인지 모른다. 따라서 필자는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전통도자문화를 살펴보고 오늘날 우리 전통도자가 과거의 명성처럼 세계도자문화의 선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옛 우리 도자문화의 독창성
우리는 자타가 공인하는 우수한 도자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려청자는 초기 중국의 영
향을 받아 만들기 시작하였으나 곧 중국의 청자를 빠르게 변화시켜 고려화 시킴으로써 국내외의 무한한 찬사와 동경을 받았다. 이는 고려의 대표적 문인 이규보의 글과 송의 태평노인이 『수중금袖中錦』에서 고려청자를 천하제일품의 하나로 꼽은 것, 그리고 1123년 송의 사신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仕高麗圖經』에서 고려 비색청자를 호평한 내용을 통해 잘 알 수 있는데, 이러한 평가는 중국청자를 독창적으로 고려화시킨 - 고려청자의 유태釉胎의 색, 상감기법 시문과 개발 등 - 결과로 얻어진 것이었다. 고려청자의 제작전통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분청사기粉靑沙器의 경우에도, 과감하게 생략하거나 과장하고 변형시키며 재구성함으로써 당시의 도자문화를 풍요롭게 하였으며, 세계도자의 역사에서 범상치 않고 특별한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조선의 백자 역시 세계최초로 경질백자를 완성한 중국백자의 영향을 받아들였지만 중국과 같이 웅장하고 화려한 백자가 아닌, 조선의 독특한 감성을 나타내는 ‘당당하면서도 절제있고 사치하지 않은 아름다움’으로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조선의 백자는 조선 500년간 이러한 독자적 조형을 일관되게 이끌어 나가며 오늘날 까지도 소박하고 가공되지 않은 자연적自然的 미美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근대의 우리 도자문화
조선시대까지 중국과 함께 선두를 지켰던 우리의 도자
문화는 19세기 후반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치는 동안 대량생산된 자기의 수입과 외래자본에 의한 도자의 제작이 증가하면서 수공예적 명맥을 지켜온 전통적 조선도자의 가치를 상실케 하였다. 또한 우리의 전통을 근본으로 근대적 의미로의 도자발전을 이룩해야 할 이 시기에 제국주의의 미적 취향을 강요당함으로서 독자적인 전통계승의 기회를 상실하였다. 즉, 일본인의 복고적(골동적) 취향에 맞는 고려·조선의 도자를 모방한 도자기가 팽배하게 된 것이다.
해방 이후 비로소, 전통도자를 한국인의 정서와 미감에 맞는 도자로 발전시키기 위한 부흥운동이 일어나는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도자기술의 부흥을 위해 1950년대 한국조형문화연구소(대방동 가마)와 한국미술품연구소(성북동 가마) 설립이다. 이들 연구소는 전통의 계승과 현대화에 노력했으나, 국내 수요자를 확보하지 못하는 등 재정적 어려움으로 문을 닫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부흥운동은 도예계에 많은 영향을 주어 대학 내 도예교육의 활성화 및 유학파 신진도예가의 배출을 가능케 했다. 또한 연구소에 몸담고 있던 도공들이 독립해 이천, 여주, 광주 등지에서 자리를 잡아 도예촌을 형성하는 발판을 마련해 전통도자 영역의 확대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1980년대 전승도예협회 설립과 도자기축제 등의 많은 도자활동은 도자기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계기를 만들어 전통도자문화의 저변확대에 박차를 가하게 하였다.
오늘날 우리 도자문화
오늘날 우리의 도예계는 도자기조합·단체의 설립 및 도자기축제의 활성화, 세계도자기엑스포 및 비엔날레 개최 등 더욱더 활발한 도자활동을 통하여 도자문화의 저변확대에 힘을 쏟는다. 그러나 근대시기 전통의 단절로 인한 도자발전의 역행은 오늘날까지도 그 복구를 힘들게 하고 있다.
현재 우리 도자가 유럽도자나 일본 도자에 여전히 밀리고 있는 원인은 도자 강국들에 비해 도자기의 대중화, 일반화가 약하기 때문이다. 몇 해 전 필자가 잠시 일본에 있을 무렵 방문했던 가정집이나 식당에서는 한결같이 모두 도자식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신구나 인테리어 소품 등 다양한 도자제품이 즐겨 사용되는 것을 보았다. 이는 일본 도자문화가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깊이 파고들어 있는지를 확연히 보여주는 한 예일 것이다.
우리나라도 근래 웰빙문화 속에 도자기를 사용하는 인구는 점차 늘고 있으나 여전히 유럽이나 일본을 따라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과연 도자문화의 대중화에 앞서기 위해서는 전통도자 제작자가 강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첫째로 현 시대에 어울리며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도자상품 개발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의 음식문화도 점차 변하여 간소화되고 퓨전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자기 매장에는 여전히 재래식 반상기 세트와 감상용 항아리가 즐비하다. 또한 다구용품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차를 즐기는 다도茶道인구에 비해 다구용품이 너무 많은 것이다. 오늘날 우리문화의 흐름이 어떤지를 파악하여 21세기 생활에 어울리는 다양한 도자상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를 외면하면 도자기가 외면됨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하겠다.
둘째는 여전히 남아있는 근대시기 외세취향의 복고적 도자제작 - 모방模倣도자 - 을 과감히 버리라는 당부이다. 과거의 찬란했던 도자문화가 말해주듯 한국적 독창성 없이는 국내에서 외면당함은 물론 세계 도자문화에서도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전통도자 제작자는 21세기에 어울리는 창조적인 전통계승의 자세로 작업에 임하여 독창적인 우리 도자문화를 일궈야 할 것이다. 과거의 역사성을 지니고 일상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유용성과 아름다운 한국의 미를 모두 담고 있는 전통도자, 오늘날 도예계에 가장 필요한 것
이 전통도자의 활발한 제작, 연구라고 생각된다. 도자기의 수출입이 확대되면서 서유럽의 고가 명품도자가 수입되어 상류층의 눈을 사로잡고, 한편으로 중국에서는 저가의 중국 도자기가 대량으로 들어와 대중의 눈을 현혹하고 있다. 이렇듯 쏟아져 나오는 도자기의 홍수 속에서 우리 도자가 당당히 우뚝 서기 위해서는 가장 한국적이며 21세기에 어울리는 우리 전통도자의 아름다움으로 세계의 눈을 사로잡아야 하겠다.
점차 전통도자제작자의 움직임이 활발해 지고 있다. 21세기에 어울리는 창조적 전통도자 상품들이 공예샵을 채우고 있다. 전통도자 제작자들이 그만큼 노력한다는 것이다. 전통도자 제작자의 이러한 노력은 국내의 소비자를 끌어당겨 전통도자의 본격적인 대중화를 재촉할 것이고, 이러한 대중화는 곧 세계도자문화 속에서 한국전통도자의 아름다움과 그 가치를 널리 알려 한국전통도자를 세계인이 인정할 그 날을 앞당길 것이다.
<사진설명>
1 덤벙다완, 15.5×7.5(h)cm, 황동구 작, 제1회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입상작
2 담, 11×28(h)cm, 김상만 작, 제1회 『아름다운 우리 도자기』 대상 수상작, 조선관요박물관 소장
3 모란·덩굴무늬 잔받침(靑磁象嵌牧丹文盞托), 고려 13세기, 7.5×10.1(h)cm, 개인소장
4-1청자음각운학문대접 20×7(h)㎝(1935년),
4-2청자상감운학문병 9.8×19.1(h)㎝(1941년),
4-3청자상감운학문주자 21.4(h)㎝(1942년), 황인춘 작, 개인소장
5 2003 제 3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도자상품관
6 백자비대칭푼주, 46.5×37(h)㎝, 김익영 작, 조선관요박물관 소장
7 분청사각제기형접시, 35.5×14(h)㎝, 정재효 작, 조선관요박물관 소장
필자약력
청강문화산업대학 도자디자인과 졸업
관동대학 산업미술학과(도자전공)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도예학과 졸업
2001 세계도자기엑스포 국제도예 워크샵 어시스트
시가라키 ‘도예의 숲’ 거주 작가, 일본
(주)서화통상 상품기획팀 근무
현, (재)세계도자기엑스포 조선관요박물관 학예연구팀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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