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배의 옹기막 이야기(3)
기질
- 유목과 은둔
글 이현배 _ 옹기장이
돌아가기가 멀다
서둘러 가기도 멀다
언제나
어디서나
그러했던 거
오늘
새삼스럽다
유목과 은둔의
이 걸음, 이 자리
또
멀기만 하다
지난 달 초청받은 학술대회가 있었다. 화천문화원에서 주최한 것으로 17세기에 화악산 화음동에서 곡운구곡을 경영했던 김수증의 은둔사상과 은둔미학을 동서양의 은사문화를 통해 조명하기 위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예수회 외국인 신부님을 만났다. 신부님은 옹기장이의 자격으로 은사문화에 대한 학술대회에 초청받은 것을 재밌어했다. 사실 재밌기로 하면 그 신부님이 훨씬 더 했다. 파리에서 철학을 전공하였는데 성철스님의 불교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거하며, 한국말을 잘하는 정도가 그 말이 갖는 깊은 의미까지 체득하여 성철스님의 추모법회에서 강론을 할 정도이니 말이다.
이 옹기장이의 삶을 은둔으로 보고 초청해준 것 같은데 나는 옹기장이의 기질을 유목과 은둔으로 본다고 했다. 신부님은 유목과 은둔을 동시성으로 보는 나의 관점을 매우 흥미롭다 했다. 사실 이동성을 표현하는 말로 요즘 많이 쓰이는 노마드Nomade라는 말을 유목이라 직역하여 쓰긴 하지만 크게 와 닿지 않았는데 신부님이 ‘그리스도교 전통의 은수생활’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면서 성경의 구약시대 이야기를 생생하게 이야기해 말 그대로 유목이었다.
‘유목과 은둔’이라 하니 말이 어렵다.
쉽게 가자.
그게 딱 중화요리 집 ‘철가방’이다.
엄밀하게 그거 알루미늄이다. 비철금속으로 비철가방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비철가방이라 하면 오히려 말이 안 된다. 바람처럼 날쌔게 그리고 가볍게 하기위해 알루미늄소재로 하여 배달을 하기위한 단순한 도구에 지나지 않지만 이미 우리의 일상에서 배달인과 동일시되어 인격화되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냥 철가방이라 해야 맞다.
철가방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희화화되었다. 김상진 감독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보자. 영화에서 분명히 주변 인물이지만 주된 인물 4인방이 ‘그냥’ 주유소를 습격한 것과 달리 영업시간을 넘어서 짜장면 배달을 시킨 것에 엄중 항의하는 배우 김수로가 분한 배달민족(?)의 기상. 황당한 폭력에 공분하며 집단에 기꺼이 주관적 의지로 자신을 귀속시키면서 바이크의 광음과 함께 보여주는 크게 과장된 허세. 관객으로 타자가되어 소리 내어 웃지만 그 만큼의 저 깊고 깊은 울분.
서구중심의 세계문명은 출장자, 여행자, 이민자 등에 의해 핸드폰과 노트북, 사이버와 디지털, 그리고 도시와 비행기, 공장, 주유소, 승용차, 호텔, 항만 등을 일상화시켰으니 유목문명의 부활이다.
우리사회 또한 유목문명의 첨병노릇을 하는 휴대폰이 크게 확산되었던 시기에 이를 부추키는 상업광고로 철가방이 들녘에서 바다로 까지 ‘짜장면 시키신 분!’하면서 크게 활약하였던 것을 돌이켜 보면 ‘철가방’은 그 자체가 유목문명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옹기가 그렇다. 옹기장이가 또 그렇다.
조선 후기 대표적 지성이었던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옹기장이가 한번 지나가면...’이라 표현하였다. 내용인 즉은 옹기공들이 그릇을 굽는 데 땔감을 너무 많이 써 산이 헐벗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나무 따라 흙 따라 옹기점을 형성하니 유목이며(옹기일 에서는 생산하는 곳을 ‘점’이라 하고 파는 곳을 ‘전’이라 한다), 봉건신분사회에서 일반 신분에도 훨씬 못 미치게 하대 받으며 점사람, 점놈, 독쟁이로 당신들만의 고유의 사회를 형성하게 되니 은둔이다. 이 동시성은 세계문명의 흐름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현재성을 충분히 담보한다.
식민지의 비정상적 역사상황으로 인해 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에 실패한 역사인 한국의 근, 현대사에서 전통의 단절 및 왜곡은 피할 수 없었다. 도자문화 또한 올바른 계승 및 정립이 있을 수 없었다. 그나마 미미하게 전통을 이어왔다 할 옹기, 옹기장이 또한 철가방처럼 희화화 되었다. 그래도 분명한 것은 그 미세한 흔적들을 통해 전통의 근거를 획득할 수 있는 원천, 그것은 바로 옹기장이의 ‘몸의 기억’과 그 몸을 부리는 ‘기질’이라는 것이다. 거기에는 매우 완성도가 높았던 우리의 도자문화가 축적되어있다. 이 미세한 흔적들로부터 재구성을 통해 우리 도자문화의 원형을 회복하면서 시대별로 나누어진 토기, 청자기, 분청사기, 백사기의 잃어버린 사슬까지 찾아내기를 기대한다.
필자 이현배 옹기장은
전라북도 진안에서
‘손내옹기’를 운영한다
jilb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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