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5.12 - 2004.5.18 통인화랑
분청항아리에 비쳐진 달항아리의 그림자
글 장계현 _ 통인화랑 수석큐레이터
달항아리의 제작 기법을 응용한 분청항아리와 다기그릇을 주로 한 정영 도예전이 통인화랑에서 열렸다. 단국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한 후 서울 근교에서 10여년간 작업하던 작가가 이천으로 내려간지는 불과 삼 년 밖에 되지 않는다. 서울에서 긴장되고 힘든 시간을 보낸 그가 그곳에서 자연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해온 물레·장작가마 작업은 수더분하고 편안한 조형의 항아리를 만들게 했다.
정영 작업의 근간이 되는 조선 시대 달항아리는 그 시대의 검약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은 성리학을 근저로 하여 탄생되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정양모 선생도 조선 달항아리에 대해 “자연에 대한 관조와 이해 그리고 뛰어난 조형 감각이 바탕이 되었고 이러한 시대 분위기에 힘입어 탄생한 위대한 조형물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98년, 2002년 개인전 이은 이번 정영의 세 번째의 개인전에서는 조선조 달항아리를 만들 때 사용하던 방식대로 목물레에서 항아리의 윗부분과 아래부분을 따로 작업하여 붙이는 과정을 거친다. 작가 정영은 큰 항아리 뿐만이 아니라 작은 찻주전자에 이르기까지 두 번의 물레질을 거쳐서 붙이는 수고로운 작업을 감내하고 있다. 작가가 구태여 항아리의 잇는 부분을 드러내기도 하고 수동적인 발물레에서 보여주는 느린 속도감을 숨기지 않으려고 한 것에 대하여 새삼스레 옛 것을 통해서 자신의 것을 찾아보고자 하는 법고창신의 노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낸 작가의 항아리에서는 완벽한 기하학적인 조형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레의 돌아가는 속도에 자연스레 힘을 맡겨서 나온 비정형의 둥근 선을 통해 우리나라의 산야에서 보여주는 둥그스레한 달항아리의 선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최순우 선생도 달항아리에 대해서 그 둥근 맛은 한국적인 조형미의 특이한 체질이며 형언하기 힘든 부정형(不整形)의 원(圓)이 그려주는 무심한 아름다움을 모르고서는 한국미의 본바탕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분청 달항아리에 묽게 화장토를 시유하거나 혹은 그 위에 철화로 간결하게 시문하여 어눌한 듯하지만 정형화된 물레 선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조선 달항아리에서 배운 바를 분청철화문 달항아리로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아직은 항아리에 그림을 시문 혹은 음각으로 뭔가를 보여주려고 하고 있지만, 좀 더 비워지는 작업을 했으면 한다. 앞으로는 분청에 더욱 매진하여 힘있고 자유로운 작업을 펼쳐보이고자 하는 작가에게 새로운 작업에 대한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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