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는 예부터 가난한 서민과 동고동락했던 가장 전통적인 생활용기다. 조선조 때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옹기를 사용하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로 넓게 분포했다. 그러나 식생활의 서구화로 인해 이제 도심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전라남도 지역에서 9대에 걸쳐 300여 년간 전통옹기를 지켜온 옹기장이 가문의 독막 ‘미력옹기’를 찾았다.
자가용으로 서울을 출발해 전라도 광주를 거쳐 한시간쯤 더 달려 녹차밭으로 유명한 보성에 도착했다. 보성읍 초입에 들어서자 한쪽 편에 푸른 대나무숲을 등지고 늘어선 옹기들이 눈에 든다. 언뜻 봐도 옹기장이의 독막임이 확연하다. 9대에 걸쳐 300여 년 간 전통옹기를 고집스레 지켜온 전남 보성군 미력면의 ‘미력옹기’(대표 이학수, 52)이다.
이곳에는 대지 2천 평에 100평 크기 단층건물 2개 동이 있다. 첫 번째 건물에는 전시장과 작업공간이 있고, 또 한곳에는 가마실과 시유실 작업공간이 있다. 작업장에는 독막 주인 이학수씨를 포함 총 8명의 대장들이 옹기를 빚고 있다. 건물에서 조금 떨어진 곳엔 길이 20미터가 넘는 70년 된 오래된 통가마가 자리하고 있다.
전남지역 특유의 전통옹기기법 ‘타래질’ 고수
미력옹기에서는 전라남도 지역의 전통옹기성형기법을 고수한다. 장방형의 점토 덩어리를 땅바닥에 좌우로 쳐 가면서 얇은 두께로 넓고 긴 점토를 만들어둔다. 물레위에 나무판을 깔고 위에 마사토를 뿌린 후 항아리의 바닥면으로 둥근 흙 판을 올린다. 둥근 흙판 위에 준비해둔 넓고 긴 점토를 한단씩 올리며 안쪽은 도개와 바깥쪽은 수레로 두들겨 모양을 잡아간다. 물가죽으로 전잡기를 한 후 얇은 흙가래로 띠문을 넣고 그 위에 미력옹기만의 표시인 7번의 도장을 찍는다. 그다음 나무를 넓적하고 얇게 깎아 만든 초승달모양의 ‘뒷태’로 밑부분을 잡아 들어낸다. 기물은 미리 마사토를 뿌려놓았기 때문에 쉽게 떨어진다. 들어낸 기물은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사흘쯤 말리고 소나무 태운 재와 약토를 넣은 잿물탕에 한바퀴 굴려 잿물을 고루 입힌다. 사나흘 뒤 물기가 완전히 마른 옹기는 가마로 들어가 초벌번조없이 1,200℃로 번조된다.
중요무형문화재 96호 옹기장 선친에게
어렵사리 전수 받아 대 이어
미력옹기의 주인 이학수씨는 중요무형문화재 96호 옹기장 보유자였던 선친(이옥동, 94년 5월 작고)의 대를 잇고 있는 옹기장 전수자다.
“아버지는 제가 옹기를 굽는 것을 무척이나 반대하셨지요. 천대받는 옹기장이 일은 당신대에서 끝나기를 바라셨던 거지요. 하지만, 피는 속일 수 없었나 봅니다. 대학시절인 76년 여름, 대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으로 내려왔습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한 그로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의 부친 역시 한달 가까이 말을 하지 않을 만큼 대로했지만 아들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대물림을 허락했다. 하지만 아들이라고 특별히 대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혹독하게 다그쳤다. 우선 옹기를 달구지에 싣고 이곳저곳 다니며 내다 팔게 했다. 집안 가득 쌓인 옹기를 모두 판 후에야 흙을 만질 수 있었다. 그는 옹기를 팔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얕잡아 보는 듯한 사람들의 눈가에서 아들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던 선친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죠. 하지만 당시 시골아주머니들의 사용담과 조언들은 이후 옹기 빚는 일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학수씨는 옛 문헌을 뒤적여 전통옹기 제작방법을 더욱 연구했다. 91년과 92년 덕수궁과 롯데백화점에서 열린 옹기문화전에 출품해 작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에서 세차례나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97년에는 제4회대한민국도예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1997년에는 늦은 나이에 단국대 대학원에도 진학해 이론적인 바탕도 다졌다. 이런 노력의 결실은 미력옹기가 명성을 얻는데 크게 일조했다. 최근들어 건강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서울 경복궁안 전통공예관과 인사동 통인가게 용인민속촌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서울을 비롯한 방방곡곡에서 미력옹기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이학수씨는 98년 11월과 올해 1월에는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에서 두차례 개인전을 가졌으며 현재, 남도대학 도예과에서 겸임교수로 후학들을 가르치는 기쁨도 누리고 있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전라남도의 옹기는 타지역과 달리 많은 일조량 때문에 덜 발효되도록 옹기의 입이 좁고 배가 풍만한 형태가 특징입니다. 각 지방별로 옹기의 생김이 다른 것은 기후와 풍토에 맞게 만든 선조들의 지혜입니다. 현대의 옹기장이는 옛날과는 다른 시대상황에 맞춰 제품의 종류와 크기, 모양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미력옹기에서는 전통기법을 고수하면서 ‘웰빙’ 생활에도 잘 어울리는 옹기도 빚고 있다. 특히 냉장고 안에 층층이 넣을 수 있도록 납작하게 만든 옹기단지와 물안개를 만들어내는 옹기조명등은 직영전시장인 서울 인사동과 양재동점, 경기 분당점의 효자상품이다.
자녀에게 옹기 가업 물리고 싶어
운영자 이학수씨의 아내 이화영씨는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다. 결혼 후 옹기를 배워 남편과 함께 옹기제작 기능전수자가 됐다. 하지만 지난 97년 자궁경부암 선고를 받고 작업을 멈추고 요양했으며 최근, 병이 많이 호전돼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씨부부는 현재 외국생활중인 자녀(2남 1녀) 중에서 가업을 이을 옹기장이가 나오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얼마전 하루는 큰아들이 지금은 다른 공부를 하고 있지만 어느날 갑자기 옹기하고싶다 하면 받아주실꺼죠?”란 질문에 무척 대견스러웠다.
청죽에 둘러싸여 그의 아버지가 한으로 생각했던 옹기를 이젠 자랑스러움과 열정으로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옹기장이 이학수. 그의 미력옹기 독막에서는 새벽부터 물레대장들의 “척! 척!”이는 타래질 소리가 혼신의 힘을 다해 옹기 항아리에 숨을 불어넣는다.
김태완 기자 anthos@hitel.net
미력옹기
전라남도 보성군 미력면 도개리 316
061-853-8090, www.ong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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