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예술의 경계에서
글/우관호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교수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인사아트센터 5층에서 열린 김순식의 도자회화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전시였다. 작가의 표현대로라면 이번 전시는 단순히 도자회화기법을 선보이는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전시장에 설치된 벽화와 그릇들에 그려진 그림들은 기법 이상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김순식은 동양화를 전공한 후에 중국의 징더전(景德鎭)에서 오랜기간 도자회화를 연구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순식의 도자회화는 많은 도예가들이 형태를 만드는 것 이상으로 표면의 표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도예가들의 작품표면은 질감의 표현 또는 ‘무기교의 기교’에 천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정치한 그림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아래서 김순식의 그림은 ‘도자회화’의 신경지를 개척하는데 기폭제로서 한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 그는 고온발색의 실험에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청화의 농담은 물론 진사의 발색을 다각도로 나타내기 위해 환원, 중성, 산화염 등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흔히 진사라 하면 붉은색을 떠올리기 쉬우나 산화염에 의한 발색은 명징한 녹색으로 나타난다. 맑고 투명한 환원백자의 진사와 부드럽고 따뜻한 산화백자의 진사는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변화 유도하려는 작가적 노력의 산물일 것이다.
또한 작가와 작품에 직접 관련이 없을 수도 있으나 이번 전시의 이면에는 광주요라는 기업의 역할이 있었음을 지적하고 싶다. 실제로 김순식의 전시는 한 작가가 개인의 공방에서 이루어내기는 질과 양에서 버거운 일이었다.
도예의 태생적 취약점인 ‘소성’과 관련하여 광주요의 시설과 인력의 도움이 수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도판 하나하나를 만들고, 그리고 구워내는 것은 차치하고 식기류세트의 경우가 좋은 예로 생각된다. 많은 수의 작품 가운데 단촐하게 세팅된 식기들은 그냥 백자로도 좋았을 법한 디자인이었다. 그 위에 툭 던져진 김순식의 그림은 서로를 보완 보충하는 좋은 사례로 남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김순식의 이번 전시는 자칫 간과하기 쉬운 ‘그린다는 행위’에 대한 성찰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기술적으로 기법적으로 어려운 것을 피하고 막연한 예술성 또는 아이디어에 집착하는 일부 작가들에게도 좋은 귀감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나아가 기업이 작가를 후원하고 양성하는 최초의 사례로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칭찬하고 싶다.
그러나 호사다마는 있는 법. 김순식의 작품 중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도자회화’의 내용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작가의 말대로 문양 하나하나에는 전통적인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통적 설화 내지는 속담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며 현대의 삶에 반드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철사의 발색이 조금 미흡한 것과 더불어 앞으로 그가 연구해야할 과제가 ‘형식을 아우르는 내용’ 이라고 생각한다. 징더전의 전통기법에 의한 도판작품과 분수기법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작가의 말대로 이번 전시는 도자회화기법의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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