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 - 봉우리
글/박현대 조각가, 현대갤러리 관장
편성진은 추상이나 구상으로 구분되는 미술계에서 어느 한쪽만 고집하면서 작업을 하는 작가는 아니다. 주로 추상적 도조작업을 추구하지만 한편으로는 구상적 작업도 병행하면서 작가 현실세계의 조형언어를 실행에 옮기는 실험성을 지닌 작가인 것이다.
각박한 사회가 사람과의 관계를 이성적 판단의 범주 안에 담아 쉽게 변질되게 만드는 요즘세태를 뒤로하며 작가는 가끔 그를 반기는 산을 오른다. 과욕을 부리거나 욕심을 갖고 오르는 자도 하산할 때는 다 두고 가볍게 떠나도록 해주는 묵묵한 산이라는 자연을 통해서 작가는 여유의 형태를 단순히 돌기 몇 개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의 외형을 관심 있게 살펴보면 대부분의 작품들에 일정한 비율로 배치된 돌기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것들은 작가가 즐겨 찾는 산의 봉우리를 표현한 것이다. 그가 쉴 곳, 현실의 그늘이며 바로 묵상하기 좋은 안식처이다.
작가의 근작들은 다분히 98년 두 번째 전시에서 보여준 풍경화와 같은 서정적인 도조의 연장선에서 그 맥을 찾을 수 있다. 곡식을 거둔 들녘에서 홀로 남아 상념에 잠겨 지난날을 회상하는 듯한 허수아비의 심정으로 연출되어졌던 그때와 매우 유사하다. 물론 선의 형태와 작품의 주제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할 수 있는 굵직한 덩어리에서 심플하게 엮어진 작은 돌출의 볼륨들은 마치 한복을 곱게 입은 새색시의 긴장된 표정에서 이따금씩 보이는 연한 미소와 같은 산뜻한 느낌을 주고 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추구하는 굵게 자리 잡고 있는 무게중심 안에는 무거울 것 같지만 시골동네 중앙에 어김없이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팽나무처럼 말없이 묵직해도 부드러움을 알게 해주는 여유가 멋스러움을 갖게 하는 가벼운 작은 돌기와 절정의 대비를 이룬다.
파격적으로 빠르게 변해가는 주변의 흙 작업가들의 거친 표현을 알면서도 자제하고 절제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정서에 맞는 코드로 분명한 자기만의 색을 발산하며 작업에 매진하는 서정적 도예작가 편성진의 편안한 작품들을 통해 이 가을날의 햇살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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