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Artist 김 종 훈 / 행간의 철학이 담긴 주전자
  • 편집부
  • 등록 2007-05-17 16:30:15
기사수정

Artist 김 종 훈

글 윤두현_영은미술관 큐레이터

행간의 철학이 담긴 주전자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예술에 있어서도 완전한 독창성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어쩌면 창의성이라는 것은 과거의 무수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면서 선조들이 하나하나 쌓아올린 성 위에 조그마한 돌 하나를 더 올려놓는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롤랑바르트나 움베르트 에코 등의 이른바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은 바로 그러한 맥락에서 과거와 현재의 창작물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개념이다. 즉 문화와 문화 혹은 과거와 현재 간의 끊임없는 교감 속에서 비로소 새로움이라는 것도 잉태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김종훈 역시 한국의 문화 혹은 전통도자에 한하지 않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예술들에 대한 관찰과 교감을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해가고 있다. 자신만의 도예 영역을 개척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주전자다. 그의 주전자는 우리의 삶에 대한 작가 고유의 직관적인 성찰과 도예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의지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훈의 도자기 주전자는 값싸고 견고한 신소재들의 홍수 속에서 자칫 무겁고, 불편하고, 깨지기 쉬워 번거로운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생활의 편리가 행복을 보장해주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상호간의 단절, 소외를 조장하는 등 그 악영향도 결코 적지 않다. 이는 바로 우리가 그러한 불편함과 번거로움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김종훈은 차에 심취하면서부터 도자기로 빚은 주전자를 착안하게 되었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경기도 여주의 한적한 마을에 둥지를 틀고, 자연을 벗하며 주로 화기, 찻사발 등을 작업해 온 그에게 있어 그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는 그 같은 구상을 가시화하고자 주전자의 내열성과 실용성을 높일 수 있는 소재와 새로운 조형미를 실험해 왔다. 특히 그는 도자기의 내열성을 실험하기 위해 1년 이상 주전자를 직접 사용하면서, 이의 실용성을 높이는 데 열중했다. 다른 한편으로 자연유나 무유 등을 통해 빚어낸 기면의 오래된 듯 투박한 질감은 전혀 억지스럽거나 가볍지 않아 그간 작가가 쌓아온 내공의 무게를 쉬 짐작케 한다. 손으로 잡았을 때 뜨겁지 않도록 고안된 나무, 신주, 무쇠 등을 소재로 한 손잡이의 재료들은 그러한 기면과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각각의 주전자들은 흡사 오랜 세월동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온 옛 물건처럼 은근한 정취를 다채롭게 드러낸다. 그런 이유로 그의 주전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면, 어느새 향긋한 차향茶香이 코끝에 어리는 것만 같다. 어느덧 그가 작업실에서 손수 쓰던 주전자에도 차심茶心이 깊게 박힌 찻사발이 주는 감동에 걸 맞는 은근한 울림이 깊어져 가고 있다. 이쯤에서 우리는 예술품이 단순히 모양을 갖춤으로써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쓰는 이의 마음이 어우러졌을 때라야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는 그만의 철학을 발견하게 된다.

정리하자면, 김종훈의 주전자가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곧 “있는 것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한다.”라는 철학적 진리에 다름 아니다. 그는 공예적인 차원에서 지극히 인위적인 인공성으로부터 출발하지만 그 끝에서는 결코 작위적이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빚어낼 줄 아는 작가다. 도자기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자리하게 되었을 때라야 만이 그 빛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렇기에 더욱 소중한 체험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것이 전기만 넣으면 불과 몇 분 만에 끓는 물이 나오는 속도와 편리의 시대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적인 느림과 불편함의 문화가 그 나름의 가치로서 요청되는 이유다. 주전자에 찻물을 데워 차를 우려내는 동안의 그 찰나적 행간에는 우리의 삶에 관조의 깊이를 제공하는 마치 소금과도 같은 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것에서 예술의 정수와 삶의 행복을 발견한다는 거장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이유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결국 김종훈의 주전자는 장식성에 치우친 표면적인 아름다움을 담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간의 철학까지 담겨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더 많은 자료는 월간도예 2007년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세로형 미코
이영세라켐
02이삭이앤씨 large
03미코하이테크 large
오리엔트
미노
삼원종합기계
진산아이티
케이텍
해륭
대호CC_240905
01지난호보기
월간도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