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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환의 두 번째 골동 이야기
  • 편집부
  • 등록 2007-05-14 18: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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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덕환의 두 번째 골동 이야기

내가 이 주병과 살은 지가 어언간 40년 엄청 긴 세월 같기도 하건만 짧게 생각해 보면 엊그제 일만 같다. 약 600년 전 이를 빚은 도공陶工 역시나 그러한 생각에서 마음이 동해 이 주병을 빚었으리라. 뭐니뭐니해도 가장 행복한 곳이 천지천天地川 임을 생각하며 흙 몇 줌 토닥거려 제 육신으로 삼고 그 살갖에 천지천과의 연을 좇는다는 맹서라도 하였음일까. 돌이켜보면 나도 이 주병으로 인해 우리 골동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음을 물론 이후로 도공의 푸념작들로만 수집한 계기가 되었음을 밝히면서 이 병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조선 초기의 병 치고는 형체가 아주 흔치 않은 병이다. 고려청자에서 조선말기까지 이르는 병들의 일반적인 형체는 뚜렷한 밑굽과 늘씬한 몸통, 그와 잘 어울리게 만든 목 부위와 따름곳의 균형미가 잘 갖추어진, 다시 말해 일체미적인 면에서 빼어난 모습들을 보여주고있다. 그런데 이 병에서는 그런 일체미가 보이지 않는다. 병 전체의 형체미를 돋보이게 하는 밑굽과 목부분이 없어 그저 몸체와 따름곳(口剖-구부)만 있는 형상이며 허리쯤에 있어야 할 배 부위가 아래편으로 축 쳐져 있어 얼핏 보면 매우 못생긴 병이다. 하지만 이런 못나게 여겨지는 것들이 이 도공의 의도적인 행위였음을 알 수 있는데 비밀은 표면에 숨어있다.

도안된 글자들을 먼저 보도록 하자. 얼른 보면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인다. 그냥 단순히 멋대로 성의 없게 써 갈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보자.
하나같이 그 글자가 담고 있는 뜻(의미)을 따라 모양새(글씨체)를 이뤄 글씨가 쓰여졌음을 알 수있다. 그런데 그것은 썼다라기 보다는 그림 그리듯 그린 것이라 함이 걸맞겠다. 먼저 각 글자의 배치를 보면 하늘天자字는 병의 가장 높은 자리로 치켜 올렸고 따地자字는 아래에, 내川자字는 땅과 같은 자리의 옆으로 두어 현상의 자리들로 매김하였다.
글씨의 모양새로는 하늘天자字에서, 사람 「人」획을 보다 높다는 것을 인지하도록 길게 쭉 뻗쳐 썼다. 그리고 두 「二」획은 사람 「人」획의 높은 끝단 자리에 살짝 앉혀놓아 한 눈에도 높다라는 것을 인지케 하였다. 그리고 내川자字는 각기 세 획의 꼬불림을 달리하면서 마치 시냇물이 졸졸졸 흘러가는 양 그려 시내라는 것을 상징화 시켰으며, 따地자字는 납작하게 좌우로 푹 퍼지게 그려 넓은 대지를 연상케 함과 만물을 지탱하고 단단하고 믿음직한 푸근함을 갖게 하는 모양새로 표현하였다.
地와 川 사이에 나무 한그루[사진1], 川과 天 사이에도 한 그루[사진2]를 두어 따地자字와  내川자字 사이의 나무는 그 뿌리를 따地자字의 흙土변에[사진1] 내리게 하면서 얌전히 처리되었고 내川자字와 하늘天자字 사이의 나무[사진2]는 우람스럽게 하여 음양의 구사를 꾀한 것이다. 좀더 살펴 본다면 따地자字 흙土변에 뿌리박은 나무는 얌전하게 내川편으로 가지들을 자리하게 하였고 川에서 하늘天 편으로 가지들을 뻗은 나무는 좀 더 힘찬 씩씩한 모습으로 위쪽으로 뻗고 있다. 가지들의 길이나 굵기는 물론 땅과 물 그리고 땅, 물과 하늘의 일맥 상통성과 조화성으로 음양의 이치를 부각시키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또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위와 같은 모든 행위가 순간 물 흐르듯 일순간에 처리되었다는 점이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하거나 상품화 할 물건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생각을 오롯이 나타내어 살붙이처럼 곁에 두고 살갑게 지낼 술병으로, 예술적인 완성을 위한 긴장감이나 욕심을 덜어내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오로지 자신의 뜻을 형상화 하는 것에 온갖 기지와 재치를 쏟은 도공의 한량없는 경지를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로는 바로 이 병의 상은 “우주상”이다.
天地川­그것이 바로 우주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이 주병은 소우주인 셈이다. 하늘天과 땅地, 물川은 각각 홀로는 미려하지 않다. 하늘은 끝모를 깊이와 넓이의 무한한 부푸름, 땅은 담담하게 모든 것을 품고 그 안에서 낳고 기르는 푼푼함을, 물은 잔개울이 모여 강과 큰물을 이루어 도도하고 늠름한 모습으로 이들이 어울려 빚어내는 조화로움이 곧 이세상 모든 이치를 가름하고 온전한 미려함을 낳는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모습을 담아낼 술병을 빚으려면 어떠한 몸매로 할 것인가. 그것이 바로 이 술병의 몸매이다. 사람이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보다 꾸밈없는 자연의 모습을 담으려 도공은 고심했으리라.
그래서 주병의 밑굽을 없애고 주저앉힘으로써 주병 바닥과 땅을 밀착시켜 병의 안정감을 꾀함과 동시에 땅과의 친근감을 더하게 하고 목 부위도 병 자체의 키를 낮추고 부풀린 부위를 병의 중심부위에서 아주 아래편으로 하면서 배불리 하는 형체미를 꾀하였다. 그 결과 투박한 듯 하나 넉넉하고 질박하며 우아한 모습을 보여주고 도안에서도 자연의 조화로운 이치들을 함축해서 풍자했다.
나 자신도 알고 보면 天地川 이것들의 조합물, 그곳에 와서 그곳으로 되돌아 가는 것, 그 이상의 생각들은 허무이다.
인간의 지식과 생각에서 짜 맞추고 만들어 낸 거짓말이며 모호한 망상일 뿐이다.
이 병에 담기는 술 역시 하늘로부터 오늘 빛과 공기, 땅이 일궈 낸 곡식, 그리고 물로 빚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치로 견주어 볼 때 나 자신 역시 天地川 병속에 담긴 술이나 다를 바 무에 있겠는가? 이 주병을 비우며 도공은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노래들을 활활 태우며 무한한 공간으로 날려 보냈으리라.


이속에 담겨진 술이 나인가
내가 담겨진 술이련가
그것은 이 주병만이 알 일
天地川만이 알 일이로세
그것에 맡기면 만사가 걸림이 없네
나의 가장 친근한 벗은 오직 너 뿐일세.


고미술 연구 평론가 안덕환은 경희대 법대를 졸업했으며, 현재 (주)샘에너지 고문으로 고미애회古美愛會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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