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강 Lim MiGang
자연과의 아름다운 호흡 그리고 존재의 적막감
글 박미화 도예가
고요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아미 울음
_바쇼(1644-1694)
임미강의 작업에는 일본 시가의 한 종류인 하이쿠의 울림이 있다. 자연에 대한 관조적 시각과 간결함에 있어 무척이나 상징적이고 모던하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특히 자연과 함께 하고 그 묵묵함을 갈망하지만 그 속에서 안주하려하지 않는다는 점이 크나큰 매력이다. 작가는 끊임없이 자연을 바라보고 느끼며 그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되새긴다. 단순히 자연에의 찬미가 아니라 자연의 생멸현상을 통해 그 속에 사는 인간의 모습을 유추하는 정신이다. 늘 푸르기만 할 것 같은 나뭇잎도 겨울이 되면 차가운 땅 위에 몸을 눕히듯이, 우리 또한 그러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이며 작가는 그것을 섬세하게 감지한다. 나뭇잎 떨어지는 것만 보아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아낼 감수성이 있는 것이다.
지난 12월 27일부터 1월 9일까지 서울 인사동 통인화랑의 전시장엔 늦가을 들녘의 성에 낀 나뭇잎들이 바삭한 몸을 사진 속에 누이고, 수평과 수직의 먹색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것들은 모두 작가의 생활터전인 공주 상신리의 자연을 상징한다. 지난해 안식년을 가졌던 미국 필라델피아에서는 그곳이 너무도 그리워 힘든 시간을 가졌다던데, 그 자연은 묵묵히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며
있었던 것처럼 담담하면서도 깊은 무게감을 보여준다. 이전의 개인전 풍경에서보다 훨씬 더 자연의 모습을 많이 담아낸 것을 보면 작가의 심상이 독백에서 관계로 움직여지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의 모습들 앞에 병치된 인물상들은 여전히 작가의 내면세계에 침잠하는 모습인데, 마치 모노톤의 스냅샷snapshot처럼 정지된 형상이다. 침묵의 제스쳐gesture를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할 말이 너무 많아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무잎사귀를 머리에 인, 혹은 잎사귀 자체가 머리인 그들은 작가를 대신하는 페르소나persona_또 다른 인격, 가면이다. 잎사귀 또는 꽃봉오리라는 가면을 쓴다는 것은 단순한 변장이 아니라 완전히 그러한 존재가 되리라는 의지의 반영이다. 가면은 그
사람의 영혼이며 신체의 나머지 부분은 그저 살갗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작가의 의지는 인간으로서의 한계와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자아를 추구하고자 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예술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것은 예술가의 세상을 향한 소통 방식이기도 하다. 어차피 말은 우리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말로 표현이 된 후에 남는 기묘한 공허감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뭔가를 창조해 내고 싶은 열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진지함도 반복되면 상투적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그러나 작가는 매 전시 때마다 새로운 기법과 재료를 선보이면서 일관된
정신을 유지하면서도 실험적인 자세를 늦추지 않는다. 지난 전시에서는 가을 낙엽을 아크릴 판에 프린팅한 사진 작업과 상신리의 가을 풍경을 담담하고도 무게감 있게 표현한 수묵작업들로 어느 때보다도 참신하고 매력 있는 공간 연출을 보여주었다. 사진과 수묵, 흙조각 그것들이 경계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자연스럽고도 세련되게 공존하도록 하는 작가의 절제된 감수성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적인 침잠은 그것 자체가 목적일리 없다. 메마른 씨앗도 땅 속에 묻혀 봄이 되면 싹이 트기 때문에 소중하다. 무대의 불이 켜지기 전엔 얼어붙은 듯이 정지된 배우도 불이 켜지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론 연극이 어디서 시작되고 삶이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지만, 순환을 거듭하던 관념적 고뇌도 일상으로 향해야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임미강에게 유쾌한 딴지를 걸고 싶다. 관조적인 관념의 세계에서 때로는 우리 속된 일상으로 더 자주 돌아와 달라고. 주검 앞에서도 축제의 장을 벌이는 우리 조상들처럼 한바탕 떠들썩한 축제를 벌여보자고. 이제는 안에서 밖으로, 자신에게서 타인에게로 향하는 신명난 시간의 흐름을 가져보자고. 그리고 더 자주 ‘한계령’을 멋들어지게 불러달라고 부탁한다면 무리일까?
「紅花-Ⅰ」
「A echo in Philadelphia」
「A autumn in Philadelphia」
「Medi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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