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 Review
윤상종 도자전
2006.5.3 - 2006.5.9 인사아트센터
몰드를 떠난 아날로그함,
혹은 따스함
글 이항렬 _ 청강문화산업대학 도자디자인과 교수
윤상종은 산업도자제품의 대표적인 생산방식인 석고몰드작업을 고집해온 작가이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원형을 깎고, 몰드를 만들고, 슬립을 부어 빼내는, 오랜 시간동안 변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프로세스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다. 연륜이 쌓여가는 작가가 빠지기 쉬운 매너리즘도 그와는 상관없어 보인다. 필자가 본 가장 최근의 모습도 여전히 실험하고 있는-교직을 접은 탓에 여유도 있어 보이는-모습이었으며, 석고몰드작업이 가진 한계나 차가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는 전형적인 도예가이다.
석고몰드작업은 물레성형을 포함한 핸드빌딩기법의 단품완성의 개념과는 다르다. 복제 혹은 산업도자제품의 생산을 위한 기법이라는, 어쩌면 태생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확하게 짜여진 몰드에서 나오는 획일성, 제한된 텍스쳐나 채색을 통한 장식이 포함되며, 수월한 탈형을 위한 형태의 제약 등을 말한다.
그러나 윤상종은 그의 작업 일부에서 몰드자체를
분해하는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해결하였다. 매끈한 표면은 갖추되, 채료를 섞은 색슬립으로 드로잉을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몰드성형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우연성과, 표면질감에서의 깊이를 제공한다. 몰드작업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수십 개의 몰드로 분해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 그러나 윤상종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방법으로 해결해 나간다. 이는 드로잉에서 뿐만 아니라 잘게 나눠진 원형의 조합으로도 보여주고 있다. 수백 개에 이르는 텍스쳐를 가진 셀들은 여러 개의 각도로 회전되어 셀 수 없을 정도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이런 대상의 해체와 결합을 통해 몰드작업은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질감의 깊이, 촉각의 다양함까지 보여주고 있다.
윤상종의 개인전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변형들과 조합들, 깊이 있는 실험들은 이제 그가 말하고자 하는 ‘윤상종적인 아이덴티티’에 한 발 다가서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덧붙여 그는 실용성과 기능성에 몰두하였던 예전의 작업들을 함께 보여줌으로써 과거와 현재의 단면들도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필자를 감동시킨 것은 준비기간 내내 보여줬던 열정과,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관람객이 많음을 잘 알고 있는 겸손한 모습이었다.
허민자 도예전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2006.5.31 - 2006.6.6 가나아트스페이스 1층
제주 작가가 전하는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
글 김진아 _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센터 연구원
청자에 ‘연리문’이라는 특이한 무늬를 한 잔이 있다. 서로 다른 색을 내는 흙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흙이 섞인 그대로 무늬가 되는 독특한 장식법이다. 연리문은 현대미술이 창작의 요소로 받아들인 우연성을 수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고려청자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그러나 이 ‘연리문 잔’ 이외에 다른 그릇에서 이런 무늬를 가진 것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잊은 아니 잃어버린 장식법이라고 해도 괜찮을 이것을 조일묵은 자신의 작업방법으로 선택했다.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이 방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하고, 이용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그릇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연리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색이 다른 흙을 함께 사용해서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즉 가마에서 번조한 뒤에 발색이 다르게 나는 흙을 교묘히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조일묵은 안료를 섞어 여러 흙을 마치 유화물감처럼 색 종류별로 만든 소지를 만든다. 그리고 이 소지를 어떻게 섞을 것인가, 그릇에 나타날 무늬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섞을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런 표현방법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치밀한 계산을 세우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무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일묵은 이런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흔히 우리는 우리도자기가 세계에서 제일 발달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바른 생각도 아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만을 생각한다면 백번 옳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21세기인 지금은 전혀 아니다. 정말 도자기가 일상화되어 있는지, 내가 쓰는 밥그릇이 어느 외국 상표를 단 것은 아니지, 살펴본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말로만 하는 문화국가는 의미가 없다. 도자기를 만든 어떤 것도 찾지 않고,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도자문화가 발달한 나라라고 하는 자랑은 자랑일 뿐이다. 이것은 도자의 예술화, 아니 도자의 작품화에 경도되어 자신은 작가라고 생각하는 많은 도예가들이 만들어 놓은 현상에 다름이 아니다. 그저 청자나 백자, 분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이들이 명장이니, 뭐니 하면서 그런 것을 만들어야 도자기인줄 알게 하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진정으로 잊어버린 우리의 그릇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부정적이다.
이런 면에서 조일묵의 그릇이 시사하는 바 크다. 연리문을 다시 찾아내고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색소지를 층층이 올려 빚어서 아름다운 색을 내는 그릇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화려한 색에 맞추어 그릇의 형태도 다양하다. 그래서 그의 그릇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몸에 활력을 주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조일묵 도자전
2006.5.31 - 2006.6.6 경인미술관
잊어버린 연리문을
찾아서
글 임창섭 _ 미술평론가
청자에 ‘연리문’이라는 특이한 무늬를 한 잔이 있다. 서로 다른 색을 내는 흙을 섞어서 만든 것으로, 흙이 섞인 그대로 무늬가 되는 독특한 장식법이다. 연리문은 현대미술이 창작의 요소로 받아들인 우연성을 수세기 이전에 만들어진 고려청자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그러나 이 ‘연리문 잔’ 이외에 다른 그릇에서 이런 무늬를 가진 것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잊은 아니 잃어버린 장식법이라고 해도 괜찮을 이것을 조일묵은 자신의 작업방법으로 선택했다.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이 방법을 현대적으로 변용하고, 이용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그릇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연리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색이 다른
흙을 함께 사용해서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즉 가마에서 번조한 뒤에 발색이 다르게 나는 흙을 교묘히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먼저 조일묵은 안료를 섞어 여러 흙을 마치 유화물감처럼 색 종류별로 만든 소지를 만든다. 그리고 이 소지를 어떻게 섞을 것인가, 그릇에 나타날 무늬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섞을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런 표현방법은 당연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치밀한 계산을 세우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무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일묵은 이런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흔히 우리는 우리도자기가 세계에서 제일 발달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딱히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올바른 생각도 아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만을 생각한다면 백번 옳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21세기인 지금은 전혀 아니다. 정말 도자기가 일상화되어 있는지, 내가 쓰는 밥그릇이 어느 외국 상표를 단 것은 아니지, 살펴본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말로만 하는 문화국가는 의미가 없다. 도자기를 만든 어떤 것도 찾지 않고, 아무것도 사용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도자문화가 발달한 나라라고 하는 자랑은 자랑일 뿐이다. 이것은 도자의 예술화, 아니 도자의 작품화에 경도되어 자신은 작가라고 생각하는 많은 도예가들이 만들어 놓은 현상에 다름이 아니다. 그저 청자나 백자, 분청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이들이 명장이니, 뭐니 하면서 그런 것을 만들어야 도자기인줄 알게 하는 이들이 만들어 놓은 현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진정으로 잊어버린 우리의 그릇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부정적이다.
이런 면에서 조일묵의 그릇이 시사하는 바 크다. 연리문을 다시 찾아내고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독특한 방법으로 개발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색소지를 층층이 올려 빚어서 아름다운 색을 내는 그릇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화려한 색에 맞추어 그릇의 형태도 다양하다. 그래서 그의 그릇은 마음을 즐겁게 하고 몸에 활력을 주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신현문 도예전
2006.6.7 - 2006.6.13 공예갤러리 나눔
말과 생각의 바깥에서
몸으로 사유하다
글 윤두현 _ 영은미술관 큐레이터
강바람과 버들이 한데 어우러진 채 서로를 희롱하고 있는 북한강변의 풍경을 소담하게 펼쳐 놓은 도예전이 인사동 인사동 공예갤러리 나눔에서 열렸다. 이름모를 들꽃들이며, 물 속을 노니는 물고기들이 저마다의 빛깔과 몸짓으로 전시장을 안온하게 밝히고 있는 풍경 속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북한강변의 정취에 흠뻑 취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백자나 청자의 말끔하고 단아한 맛과 달리 분청은 투박한 듯하면서도 굵은 맛이 느껴지는 색다름이 있다. 작가 신현문의 삼벌번조한 작품들은 분청의 그와 같은 매력을 새롭게 확장시킨다. 이는 곧 오랜 동안 장인적 의지로 재료와 기법의 실험을 거듭했을 뿐 아니라, 자연을 호흡하고 사유해온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기면에 펼쳐 놓은 북한강변의 소소한 풍경들이 정적이며 형식적인 패턴의 틀을 극복하고 있음은 작가가 자연을 단순히 차용하거나 인용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자연 안으로 들어가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재벌 번조는, 비단 분청 뿐 아니라 백자나 청자의 경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번조 방식이다. 하지만 작가 신현문은 물레 작업 후 이를 삼벌 번조했다. 주지하고 있듯이 이는 기물 자체의 물리적 성질의 변형 등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분청의 특색인 기면에의 표현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채택되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육안으로 확인되고 있듯이 분청의 일반적인 기면의 느낌과는 다른 차원을 획득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필자의 지극히 주관적인 견해로 기면의 색깔을 표현한다면 짙고 푸른 강물색이라 칭할 수 있겠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ac Derrida)는 하나의
언어적 지시를 통해 사물을 인식함에 있어서 그 인식, 즉 언어적 지시에 따라 대상을 연상하는 근거는 다른 대상과의 차이에 있다고 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개’라는 단어를 듣고 실제의 개를 연상하는 것은 언어 자체와 실제 개의 유사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의미의 차이 혹은 차연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작가 신현문의 분청작품이 갖는 매력은 결국 백자나 청자와는 다른, 그리고 분청의 일반적인 맛과도 분명한 차별점을 갖는 고유성에서 찾아질 수 있는 것이다. 분청이라는 하나의 단어 속에는 무수한 차연(differance)의 숲이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신현문의 분청은 그러한 차연의 숲에 분명한 개별적 존재의 나무로 자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늘이, 산이, 그리고 버들이 수면 위로 앉은 강변에 잠시나마 머물러 본 사람은 알고 있다. 강물이 짙은 녹빛으로 빛나는 것은 우리의 가파르고 조급한 시간까지도 그 유유한 흐름 안으로 포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신현문의 작품에는 바로 그와 같은 자연의 사유가 배어 있다고 감히 말해도 좋을 듯하다. 왜냐하면, 유려한 수사로 굳이 치장하지 않더라도 강변을 거닐고 있는 그의 눈빛 혹은 손길에서 빚어진 작품의 표정이 이미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자연적 사유란 말과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도 작가의 발걸음을 좇아 말과 생각을 벗고 몸으로 뛰어들어 보자!
정화석 도예전
2006.6.7 - 2006.6.13 인사아트센터
흙으로 빚은 미소
- 표현하는 개념으로서의 도자
글 이세용 _ 도예가
예술가 중에서 공예가라는 사람들은 재료적인 측면에서만 본다면 상당히 억울한 작업을 하는 셈이다. 이른바 Fine Art에 속하는 회화나 조각을 하는 사람들은 재료적인 측면에서 가장 자유롭다. 회화는 이미 평면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깨버렸을 뿐만 아니라 다루는 재료도 물감과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예를 들면 쓰레기 더미에 굴러다니는 것들 - 목이 부러진 낡은 인형이나 구멍이 난 헝겊 쪼가리 등등 -, 심지어는 살아있는 것조차 화가들은 재료로 사용하였으며 더 나아가 비디오 아트와 같은 양식이 도입되면서 순간이나 절대 공간과 같은 비연속성 시간 개념과 공간 개념까지도 그들의 재료로 취해버렸다. 이는 비단 회화 작가뿐만 아니라 조각가들도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자유스러운가? 그러한 자유로움은 작가의 영혼까지도 자유롭게 하며 끊임없는 창작을 가능케 하는 에너지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반면 도예가를 포함한 공예가는 사용하는 재료가 매우 제한적이다. 도예가는 흙을 다뤄야 하며 섬유작가는 천이나 실을 다뤄야 하며 금속 공예가는 금속을, 목 공예가는 나무를 다뤄야 한다. 물론 장르는 파괴된 지 오래이다. 도예가가 목각을 한다거나 비디오 아트를 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러나 공예가들이 그러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재료가 갖는 높은 난이도와 예술의 근본적인 시각차라 할 수 있다. 도예가의 경우 흙을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불도 다뤄야 하며 게다가 자신이 표현하는 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재료를 다루는 숙련도가 떨어져서도 안되며 과학적인 지식도 상당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차이가 공예는 만드는 행위이나 소위 F
ine Art는 만드는 것 보다 표현하는 행위라는 근본적 시각차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예가 갖는 만드는 행위에서 벗어나 표현예술로서의 도예를 하는 작가들도 많다. 그러나 아직도 공예는 “무엇을 만든다”라는 명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사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화석은 “만든다”는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작업을 꾸준하게 해 온 작가이다. 아마도 그의 이력이 그런 그의 작업을 대변하고 있지 않나 싶다. 보통의 도예가들과는 달리 그의 전직은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국내의 몇몇 공모전에서 거둔 그의 수상 실적은 모두 조각부분이었으며 그가 아직도 석조에 관심을 갖고 중국을 오가며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가 도예에 관심을 갖고 도예를 시작한 것도 아마도 도자기 흙이 갖는 물성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대개 회화를 하거나 조각을 하는 사람들이 흙에 관심을 갖는 것은 흙이 갖는 유연성(가소성)과 우연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자유로운가? 마구 주물러서 어떤 형상을 쉽게 만들 수 있니.. 불에서 막 꺼낸 도자기의 색상이나 질감 또 그 내면의 따스함이란 또 얼마나 기묘한가? 그러나 이러한 자유로움과 기묘함을 하루아침에 건져낼 수는 없다. 물론 조각하는 사람들이 테라코타와 같은 흙 작업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정화석이 이번 전시에서 보여준 것과 같은 고온 번조의 자기는 기술적으로 매우 까다롭기 때문에 쉽게 접근 될 수 없다. 그가 자신의 공방에서 도자기 작업을 꾸준하게 해 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간 그가 다룬 대형 얼굴 조형물이나 손과 같은 작업보다 재료적으로나 표현양식이 훨씬 완성도가 높은 작업인지라 그간 그의 치열한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가소성도 많이 떨어지고 입자가 고운 백자소지로 대형 조형물을 만들기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기에 그의 정열과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이번 작업에서 흙으로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에 들어서면 흙이 지닌 본래의 따스함보다는 석조의 견고함이 먼저 관객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번에 다룬 <흙으로 빚은 미소>라는 타이틀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자 한다. 그가 이번에 보인 도자작품들은 이미 만드는 개념보다는 표현하는 개념으로서의 도자예술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나 해석은 모두 작가의 몫이 분명하니까.
“도자기는 가장 추상적인 본질에서 형성되는 조형 예술이다.” - Hebert Read-
장영필 푸레독전
2006.5.10 - 2006.5.29 갤러리 쌈지
자신을 닮은 푸레독
글 조일묵 _ 도예가
옹기는 크게 유약을 입혀 구운 오지그릇과 유약을 안 입히고 환원 번조해 흙 속에 탄소를 투입시킨 질그릇으로 나누어진다. 푸레독은 반오지 상태로 유약대신 1100도에서 소금을 투척해 소금의 소다성질과 태토의 규석질이 결합하여 유약을 바른 듯한 반오지상태의 옹기를 통칭한다.
우리나라의 옹기는 1970년대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의 사회구조와 맞지 않아 사향 길에 접어들었었다. 그러나 1990년대 경제가 안정되면서 옹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옹기를 전통도예의 맥으로 보는 서너 명의 젊은 도예가들로부터 옹기연구가 다시 시작되었다
그들 중 한명인 장영필은 대학시절부터 푸레독을 연구하겠다는 목표를 정하고 15년째 연구를 하고 있는 도예가이다. 아니 그는 푸레독쟁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작업은 철저한 실용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푸레독의 최고 장점인 통기성을 살린 쌀 항아리는 뚜껑을 나무로 만들어 사용자에게 편안함을 심어주고, 다양한 형태의 차 부속 도구들을 개발해왔다. 또한 옹기의 멋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조형을 작업에 반영하는 의지에 있다. 예컨대 옹기의 특징인 전과 목질띠를 과장되게 잡아 돌리거나, 커다란 소래기를 따루기의 형태로 훑어 내서 발상에 대한 전환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강낭콩만한 점토를 양옆으로 늘여 붙이는 재치도 보여준다. 이러한 감각적인 여러 작업 형태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거침없는 자신감과 조형미에 통쾌함마저 느낄 수 있다.
그가 과거 네 번에 걸쳐 보여준 푸레독전에서는 전통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맥을 연결하겠다는 그의 의지로 제작, 번조방법을 전통적 원류에서 찾았다.
2006년 5월, 갤러리 쌈지 초대 푸레독전에서는, 과거의 소금투척 대신 염분이 함유된 갯벌을 태토에 섞어 변화를 주었고, 염분이 적당히 함유된 제주도 옹기토를 청자토와 섞어 배합 비율에 따라 달라지는 색상의 변화를 작업에 반영시켜 변화를 시도하였다.
또한 백자 달 항아리 제작방법을 푸레독 성형에 도입하여 형태에 대한 한계를 넘으려는 그의 시도에서 형태의 다변화를 추구하려는 작가적 정신을 엿볼 수 있다. 장영필의 푸레독 연구가 끊임없이 계속되는 한 한국옹기의 영광의 날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기대해 본다.
강민수 도예전
2006.6.14 - 2006.6.20 공예갤러리 나눔
들리는 소리,
달항아리의 품성 같은
글 조명제 _ 시인
전시장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은 달항아리의 백자 빛이었다.
흰 빛깔이지만 흰 빛깔만이 아니요, 둥근 형태이지만 둥글다고만 말할 수 없는 우리의 달항아리, 그 미묘한 맛과 멋, 그 혼과 흥의 미학을 이어가는 젊은 작가 강민수의 세번째 개인전은 그의 운명을 보는 듯 했다. 달항아리의 넉넉함을 느끼게 하는 그의 부드러운 인상과 어수룩한 품성이 그런 선입관을 갖게 한다. 청각 장애로 잔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는 말도 어눌한 편이다. 말 못할 역경을 이겨낸 이 난청의 도예가는 단국대학교 도예학과 및 대학원을 마치고, 지금은 모교의 강단에서 도예작법을 지도하는 자리에까지 올랐다.
첫번째 개인전에서는 주로 백자 운용문이나 봉황문 항아리를 선보였다. 일찍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는 그는 용이든 봉황이든 직접 그려 넣는다.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운필 끝에서 그려진 용이나 봉황의 모습은 여간 해학적인 게 아니어서 보는 이의 미소를 자아낸다.
그의 두번째 개인전은 민무늬의 백자 달항아리를 주제로 하였다. 본격적인 달항아리 속으로 그의 열정을 밀어 넣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 때 달항아리의 비대칭, 혹은 비정형의 미학에 접근해 보려는 작업을 시도했지만, 비정형의 논리와 무위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 터라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는 못했다.
그같은 실험적 과정과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흡족할 만한 몇 점을 얻어 이번 전시에 내보이게 된 것이다. 하나같이 유백색의 안온함과 풍만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형태미가 어우러진 수작들이다. 그의 백자 작품의 표면에 보이는 빙열은 4각이나 5각, 또는 6각형이 아니라 잔물결 무늬처럼 유연한 곡선형을 이룬 것이 특색이다.
이번 전시에는 백자 다관과 잔, 주전자와 주병,
긴 접시 등도 선보였는데, 특히 다관이 눈길을 끌었다. 아취형이나 각진 윗손잡이, 반고리형 뒷손잡이와 옆손잡이 등 다양한 손잡이 형태로 변화를 모색한 다관은 세련된 디자인 감각이 돋보였지만 과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것이든 몸체에는 작은 달항아리 하나씩을 품고 있는 듯이 넉넉한 데가 있다.
백자 다기류의 다른 한 편에 진열된 사발만은 그 색조를 달리 하고 있었다. 산청토를 태토로 쓴 사발의 경우, 적절히 거친 맛과 아울러 변형미를 읽어 낸 시원스런 형태가 돋보였으며, 무엇보다 발색의 독특한 아름다움이 시선을 끌었다. 소금유를 입혀 번조한 다음 시노유를 발라 삼벌구이를 해서 얻은 사발은 자칫 가벼워 보이기 쉬운 시노유약 특유의 발색을 넘어서 분홍과 연보라의 혼합색상 같은 깊고도 은근한 맛을 자아낸다. 시노유 대신 천목유를 다시 입혀 구운 사발의 경우 그 빛깔이 더욱 예사롭지 않다. 어두운 갈매빛과 오렌지빛이 서로 스며든 듯한 그 이례적 색상은 실로 고혹적이라 할 만하다.
스승으로부터 누구보다도 혹독한 지도를 받으며, 긴 수련의 과정을 거친 작가는 수년 전 경기도 광주의 한 산촌으로 들어가 쌍굴뚝의 장작가마를 짓고 본격적인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담백하고도 기품있는, 전통적 달항아리의 재해석과 새로운 유약의 개발, 그리고 요변의 찻사발에 투신한 그는 잡다한 소리를 걸러내고, 한국 도자사를 통해 들리는 소리를 쫓아 그 큰 맥을 짚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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