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작품으로부터 다시 작품의 생성과정으로 의식을 인도하는
호시노 사토루의 작품세계
글/사진 박수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일본 현대도예의 출발점인 「소데이샤(走泥社)」그룹의 초기 멤버였던 야기 가즈오(八木一夫), 스즈키 오사무(鈴木 治), 야마다 히카루(山田 光) 등이 타계하고 난 이후, 일본 현대도예 리더그룹의 한 사람으로 자리잡은 호시노 사토루는 재료를 대하는 관점, 선행된 미술경향에 대한 독창적인 자기 해석, 그리고 작품의 제작과 이해 과정에서의 촉각성의 도입이라는 요소에서 주목할만한 작가이다.
1945년 니이가타현(新潟縣)에서 태어났으며 교토 리츠메칸(立命館) 대학에 재학하던 시절, 우연히 찾은 현대미술전람회에서 「소데이샤」의 야기 가즈오와 구마쿠라 준기치(熊倉順吉)의 도예작품을 접한 것이 도예계로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1948년에 결성되어 전통적인 도예의 형식을 파괴하고, 실용적인 기능을 배제한 조형작품의 창조를 추구했던 전위적이며 혁신적인 집단인 「소데이샤」는 이후 호시노의 작품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대학 졸업 후 후지이라(藤平)도예에서 도예작업에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을 익혔다. 1974년 「소데이샤」의 전시회에 출품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였고, 1979년 제5회 일본도예전에 「표층·심층 Ⅱ」로 문부대신상을 수상함으로써 일본현대도예계에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30여 년에 걸친 그의 작업의 성향과 변화, 그것에 영향을 미친 시대적 흐름과 경향 등을 각각의 작품군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 表層·深層
《표층·심층》시리즈는 1978년부터 제작되었다. 지형의 단면 형태로 몸체를 만들어 신문지의 한 부분을 찢어 올려놓고 그 위에 슬립상태의 흙을 평평하게 펴 바른다. 신문지를 떼어내면 신문지가 있던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펴 발랐던 흙이 남게 되고 신문지의 찢어진 모양대로 물결의 파장모양과 같은 것이 나타난다. 이 작업을 반복하면 여러 겹의 파장모양이 남게 되고 이로써 《표층·심층》의 구조가 완성된다.
이러한 방법으로 제작된 작품은 표면에서는 물결의 파장 모양을, 단면에서는 몇 개의 층을 표현함으로써 가시적 표층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내부구조도 은유함으로서 작품의 구조 전체를 파악하게 한다. 《표층·심층》이라는 타이틀에 대해서 작가는 「보여지는 부분은 이 세계의 진실의 일부일 뿐이다. 세계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그 배후에 숨어 있는 부분이 아닐까」라고 말한다.
보는 사람의 시선을 표면으로부터 내부로 유인하는 장치의 하나로서 흑도(黑陶)가 사용되었다. 검은색은 빛을 흡수하기 때문에 시선도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시선을 끌어들이는 힘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위에서 언급한 의미 외에도, 이후 호시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는 인스탈레이션에 관한 의식의 발현이다. 전시를 할 때 회화작품을 벽에 걸거나 조각작품을 바닥에 설치한다는 의미의 인스탈레이션은 근대에 들어와 공간 전체에 사물을 배치하고 그 결과로서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인식하게 하는 양식적 부류의 하나이다. 이와 같은 공간에 대한 새로운 사고는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되어 1970년대에 정착하였고 1980년대에는 일본에서도 성황을 이루었다. 호시노는 이 신개념을 자신의 작품에 적극 도입하였고 1979년 교토의 이테자갤러리에서 인스탈레이션의 관점에서 해석된 《표층·심층》 시리즈를 발표하였다. 이 시도는 그가 6년 간 속해 있던 「소데이샤」의 전형적인 전시방법에서 비약을 꾀하는 사건으로서도 의미를 지닌다.
◆ Temporary Style
1983년부터 《Temporary Style》이라는 새로운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스테인레스 봉, 철망, 와이어 등이 새로운 재료로 등장한다. 금속 위에 흙을 덧바르는 방법으로 조합하여 가스버너로 표면만을 소성한다. 이렇게 제작된 여러 개의 조형물은 전시장의 천장, 벽, 바닥에 배치되어 다이나믹한 공간을 구성한다.
주로 사용되는 스테인레스 봉은 여성의 머리에 꽂는 장식품과 같은 기능을 한다.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봉을 빼내면 작품은 무너진다. 기존의 모뉴멘탈한 작품과는 다분히 대조적인 요소이다.
이 시리즈는 그 때까지 점진적으로 추구해 오던 인스탈레이션이라는 표현형식을 완벽하게 소화했다는 의미 외에도, 시간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어 《Temporary Style-불과 그릇》이라는 작품은 전시장 중앙에 가스버너를 설치하고 불을 붙여 놓아, 시간의 경과에 따라 흙이 마르고 금이 가는 과정을 표현한다. 또한, 「temporary(일시적)」이라는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작품은 전시의 종료와 함께 없어진다는 점에서도 시간성의 개입을 찾을 수 있다.
◆ Appeared Figure
호시노는 《Appeared Figure》시리즈 제작을 시작하기 3년 전, 큰 전환기를 맞게 된다. 1986년 교토에 거주하던 때, 집중호우에 의한 산사태로 인해 집과 작업장을 잃었다. 이 일로 그는 우울증까지 얻게 되었고, 이후 2년 정도는 의욕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그에게 있어 흙이라는 물질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도자기의 재료로서, 대지를 구성하는 물질로서의 흙이라는 한정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고 후, 흙의 질량감, 에너지, 파괴력, 그리고 흙의 생명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그의 작품에서 작가자신과 흙의 관계는 새롭게 정립된다.
이러한 인식의 전환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되었던 점이었다. 그는 재난을 계기로 그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게 되었는지 열의를 가지고 설명하였다. 이전까지 흙을 재료로 하여 사람이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 일 이후부터는 흙과 사람 사이의 대화의 과정을 통해 같이 만들어 간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때로는 흙이 주가 되어 스스로 작품을 만들고 작가는 부수적인 역할만을 수행한다. 이렇게 변화된 그의 자연관은 《Appeared Figure》시리즈로 나타난다.
《Appeared Figure》시리즈의 기본적인 제작 방법은 손가락이나 손바닥으로 흙을 눌러 자국을 남기는 것이다. 도구는 일체 사용하지 않는다. 흙을 손으로 누르면 그 부분은 움푹 패이고 주변은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가는 신체성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물론 어떤 작업이든 신체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호시노의 작품에서 동작을 반복하는 작가와 그것을 느끼는 관객에게 촉각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를 만들겠다는 생각 없이, 그저 자연과의 대화 방법으로서 충실히 동작을 되풀이한다. 형태에 대한 구상을 배제한 채 작업을 진행하지만, 결과물은 동물이나 인체를 닮아 있기도 하다. 이를 통해 작가는 관객에게 생각의 여지를 던져준다. 예를 들어 구름이나 별자리를 볼 때, 어떤 형태를 떠올리는 것처럼 작품을 보고 느끼는 데 있어 인간이 가진 이미지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Appeared Figure》시리즈는 1989년 도쿄의 르나미갤러리와 교토의 코코갤러리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이 때 출품되었던 작품은 「액화하는 번개」와 「일어나는 상 1」이었다. 이들은 벽과 바닥 위에 설치된 판 형태의 기하학적인 물체가, 사람의 등을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물체와 함께 진열된 작품이다. 그러나 단지 바닥과 벽에 놓인 소극적인 디스플레이에 그쳤으며 진정한 의미의 인스탈레이션에는 접근하지 못하였다.
이후 작품은 점차 대형화되어 「고대녹지」, 「숲에서 나와 초원에 서다」 등의 작품은 전시장과 완전히 일체화된 인스탈레이션이 되었다. 고대녹지는 벽면에 붙여진 수천 개의 흑도 조각과 그 앞에 세워진 물체로 구성된다. 관객은 벽과 바닥에 놓여진 작품 사이를 걷는 것으로 단편적인 작품만이 아니라 작가가 설치한 공간 전체를 느끼며, 피부 감각을 포함한 신체 전체로 작품을 관람하게 된다.
2002년 시가현립근대미술관에서의 전시회에서는 드로잉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시도했다. 약간의 먹을 섞은 흑토를 손가락에 묻혀 종이 위에 찍는 방법으로 제작하는 것이다. 제작과정에서 작가는 종이의 물질성을 강하게 느낀다. 진흙이 미끄러져 내리는 종이, 진흙을 흡수하는 종이 등 종류에 따라 손가락으로 누를 때의 느낌이나 결과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를 통해 호시노는 자연과의 대화라는 그간의 작업에서 종이와 흙이라는 물질로 대화매체의 범위를 넓혔다.
보는 사람의 신체 움직임과 스케일을 미리 예상하여 작품을 제작하는 것은 1960년대 후반에 유행했던 미니멀 아트의 개념과 만나고 있다. 미니멀 아트로 인해 그 때까지 명백한 존재가치를 지녔던 작품대가 불필요한 요소로 전락하였고, 작품의 내적인 구조가 아니라 작품이 놓여진 실제 장소와의 관계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미니멀 아트와 호시노 작품 간의 분명한 차이점은 전자는 제작자의 흔적을 철저하게 배제하였지만 후자는 작가의 기술을 의도적으로 강조한다는 것이다.
손가락을 흙에 누르는 동작의 반복은 액션페인팅의 개념과 유사하다. 액션페인팅의 대표주자 잭슨 폴록은 바닥에 펼쳐진 캔버스에 붓을 대신하여 격렬한 신체의 움직임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액션페인팅과 호시노의 《Appeared Figure》 시리즈는 작가의 제작행위가 직접 작품의 조형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완성된 작품으로부터 작품의 생성과정으로 의식을 인도한다는 점에서 접점을 가진다.
◆ Performance
호시노는 1987년 「제6회 하마마츠야외미술전」에서 첫 퍼포먼스 작품을 보여주었다. 이 때는 집과 작업장을 잃고 난 후 재건을 위한 복구작업에 열중하던 시기였기에, 당시 고민하고 있던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의 원점을 표현하려던 시도가 퍼포먼스화 된 것이다. 파도소리를 배경으로 하여 몸에 백토를 바른 한 쌍의 남녀가 마주 서서 중앙부를 향하여 천천히 다가갔다가 다시 멀어지는 동작을 반복한다. 흙이 마르면서 금이 갈 때까지의 경과를 보여주는 약 1시간 가량의 퍼포먼스였다. 이 작품은 태고로부터 세대를 이어오며 살아오던 인간의 그치지 않는 생명력과 현대인의 불안정한 정신을 의미한다. 또한, 퍼포먼스에 쓰인 불의 열과 신체의 열, 그에 대한 인간의 정열을 말라서 금이 가는 흙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이 외에도 그는 2001년에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의 초청으로, 그리고 2002년 시가현립근대미술관에서 같은 주제의 퍼포먼스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이 갖는 의미
호시노의 작품은 두 가지 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앞서 언급했듯이 흙이라는 재료를 대하는 독특한 관점이며, 다른 한 가지는 ‘촉각성’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산사태라는 재난이 그의 인생에 있어 혹독한 시련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그의 작품세계에 있어서는 흙을 포함한 자연과 자신의 근본적인 관계를 되돌아보는 중대한 전기가 되었다. 그의 작업에서 흙은 더 이상 사람에 의해 형태를 이루는 수동적인 재료가 아니다.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때로는 사람을 이끌기도 하며 스스로를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제까지 미술이라는 것은 시각적인 운영으로 인정되어 왔다. 특히 모더니즘 미술의 역사는 무엇보다 시각을 우선시한다. 호시노는 도예 작가로서 시각성의 한계를 자각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촉각을 강조한다. 신체의 촉각적인 흔적을 작품에 정착시킨다. 시각성이 지배하는 모더니즘 사회에서 마이너 감각이라고 할 수 있는 촉각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운다. 관객은 공간을 이동하며 피부 감각을 포함한 전신으로 작품을 받아들인다. 시각성 내지는 관념을 우선으로 하는 작품에 반하여 신체를 주요하게 다루는 그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현대 사회에 대한 하나의 비판적 표현의 요소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 스스로의 창작활동을 돕는다는 그의 작업관과, 원초적 감각인 촉각의 도입으로 형성된 독창성은 앞으로 그의 작업 활동을 지켜보게 하는 충분한 동기로 작용할 것이다.
「표층·심층」 1979, 흑도, 15×90×42㎝
「액화하는 번개」 1989, 흑도, 228×88×70㎝
「Temporary Style-Constellation」 1985(일부 2001년 재제작), 220×400×500㎝
「손가락-흙잉크」 2001, 진흙, 먹, 한지, 328×168㎝
「숲에서 나와 초원에 서다」 1997, 흙도, 180×5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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