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52]
분청사기 박지 연못풍경무늬 편병
粉靑沙器剝地蓮池紋扁甁
글_김대환 동곡뮤지엄 관장·문화유산 평론가
사진1) 「분청사기 박지 연못풍경무늬 편병」 조선시대⎜높이 19cm, 입지름 4cm, 바닥굽지름 9.5cm
조선시대 분청사기 제작기법 중에 박지기법剝地技法은 물레로 성형한 도자기의 몸통 전체에 백토를 두껍게 바른 다음에 무늬를 그리고 그림 바탕 면의 백토를 긁어내어 백토 부분인 그림과 긁어낸 바탕의 회흑색 태토 부분이 대비되어 몸통에 그려진 그림의 경계가 뚜렷하게 나타나게 하는 기법이다. 이 기법은 몸통에 그려진 무늬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로 인하여 극대화된 추상감을 느끼게 해 주며 추상적인 모란무늬, 연꽃무늬 등에 주로 사용되어 도자기 몸통 그림의 적은 부분을 긁어내도 꽉 찬 무늬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박지기법을 사용한 분청사기는 몸통 전체에 식물무늬를 넣은 경우가 많으며 조화기법彫花技法과 함께 사용된다. 사진10)
이에 반하여, 무늬보다 바탕 면을 더 넓게 긁어내어 백토 부분인 몸통의 무늬를 강조하는 매우 희소한 사례의 박지기법을 사용한 분청사기가 사진1의 「분청사기 박지 연못풍경무늬 편병」이다. 이 유물은 매우 희귀한 박지기법의 사례로 예술성 또한 높은 작품이다. 몸통의 형태는 양면이 평편한 편병의 모양으로 공모양의 몸통을 성형한 후에 양쪽 면을 누르거나 두들겨서 납작하게 만들었다. 조선 초기부터 도자기로 활발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편병은 이동하여 사용하기 수월한 형태로 야외에서 술이나 물 등 액체를 운반할 때 편리한 형태이다. 사진2)
이 편병 몸통의 넓은 양쪽 면은 연못의 풍경을 그렸는데 연못 속을 헤엄치는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와 물 위로 피어오른 연꽃과 꽃봉오리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특히, 물 위로 떠 오른 넓은 연잎 위에 앉아있는 개구리의 표현은 우리나라 도자기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특별한 사례로 이 유물의 정점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사진11)
한가로운 여름날의 시골 연못 풍경을 사기장의 감성 그대로 표현하였고 몸통의 양면에 그려진 물고기는 통통한 것과 날렵하게 생긴 것으로 암컷과 수컷을 구분하여 음양의 조화를 이루었다. 연못 물속의 세계와 물 밖의 세계를 한 공간에 넣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물고기와 개구리의 자연스러운 조합이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 여름날, 시골의 연못 풍경을 조선시대 사기장이 감성 그대로 표현하여 도식화되지 않은 창작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순수한 자연 미감이 느껴지는 유물이다.
짧은 목을 지닌 입부분은 약간 벌어졌으며 목 아래의 어깨 부분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연판무늬를 둘러서 장식 효과를 높였다. 어깨 아래로는 2단의 연잎을 형상화한 장식과 파초무늬를 박지기법과 조화기법으로 새겨 넣었다. 사진3,4)
바닥의 넓고 높은 굽에는 소성할 때 붙은 굵은 모래알이 남아 있고 굽 안 바닥은 평편한 편으로 일부는 유약이 시유되지 않았다. 굽에 붙은 굵은 모래알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상태로 보아 제사용 부장 용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진5)
철분이 많이 함유된 태토에 기포가 많은 맑고 투명한 유약이 시유되어 있으며 유약의 표면과 굽바닥의 모래 사이에는 고착화된 흙물의 출토 흔적이 많이 붙어있다. 사진6~9)
15세기 후반에 호남지방에서 활발하게 제작된 분청사기로 고려시대 면상감 기법의 기운이 흐른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형식화, 의장화, 정형화되지 않은 도자기로 자연에서 자유롭게 소소한 무늬의 소재를 발견하고 자연스럽게 도자기에 옮겨진 것으로 당시 평범한 일상이 배어있는 투명한 거울과도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지역적인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분청사기는 박지기법이 활용되면서 추상적인 미감이 극대화되고 나아가 가장 현대적인 느낌을 받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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