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종 분청전 2003. 1. 14 ~1. 23 서미갤러리
Song of Nature
글/김진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그다지 넓지 않은 전시장 안에는 묵직한 무게가 느껴지는 항아리들과 접시, 단아한 사발 그리고 문방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밤새 앞마당에 쌓인 눈을 싸리비로 쓸어낸 듯한 화장토 자욱들이 거친 태토 위를 지나가고, 그 위에 얹어진 짙은 갈색의 철화는 바탕의 백색과 대비를 이루며 보는 이의 심상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90년대부터 분청작업을 시작한 작가 이수종은 자연스러운 형태 위에 그려지는 드로잉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제작한다. 초기의 그의 작품은 귀얄과 선각을 이용한 드로잉이 주를 이루었지만 현재는 철화분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작년 인사동의 11번째 전시회 연장선인 이번 작품에서는 그릇의 표면을 장식하는 문양으로서의 철화가 아니라 흙과 철, 즉 土와 金이 어우러져 연출하는 드라마틱한 드로잉이 두드러졌다.
분청사기에 철사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15세기 후반부터이다. 관요에 대한 중앙의 통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전국으로 확대된 가마의 장인들은 그 동안 내재되어 있던 미의식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그려진 그림들은 자유분방하고 해학적이다. 그러나 이수종의 드로잉은 자유분방하기는 하지만 해학적이지는 않으며 현대미술이 가지고 있는 전위적인 성격이 더 강하게 보여진다.
이번에 전시된 이수종의 항아리와 접시에 나타나 있는 철화(鐵畵)는 거칠고 짙은 농묵의 필선을 닮았다. 조선시대 문인화는 전문적인 화가들의 그림이 아니므로 표현이나 묘사력이 떨어지지만 각자 관념의 세계를 일정한 형식 없이 나타낸 자유분방한 그림이다. 작가는 그만의 사유를 자유롭고 대범하게 기물 위에 표현하고 있다. 또한 철사를 질료적(質料的) 성격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정신성이 강한 재료로 인식하고 인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자연의 진리를 거스르지 않는 심경을 나타내고자 한다.
원래 분청사기는 태토를 감추고 밝은 표면을 얻기 위해 분장을 하는 것이지만 작가는 오히려 태토를 바탕으로 받아들이고 화장토와 철사를 오토마티즘(automatisme)과 드리핑(Dripping)기법으로 드로잉 함으로써 기존의 미적가치를 파괴하고 새로운 조형의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전통적인 분청사기의 단순한 모방을 넘어선 대담하고 주관적인 호소력을 갖는 표현주의적 추상예술로 전환하는데 의미가 있다.
그의 오토마티즘은 다시 도교의 무위자연 사상과 맞물려 무작위적으로 그의 항아리와 접시들 위에 나타나고 있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가 모두 자연에서 온 것인 만큼 무의식적이고 인위적이지 않은 그의 회화들은 만지다가 만 듯한 형태와 원초적으로 다가오는 흙의 물성과 어울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다. 또한 무리한 조형의지로 재료의 특성이 형태에 묻혀버리는 행위 또한 하지 않는다. 다만 그릇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자연과 일체가 되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작품을 제작할 따름이다.
현대는 기존의 관념과 새로운 관념이 충돌하는 시기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관람자들은 인간의 감성과 관습, 의식까지도 변하기를 요구받고 있다. 기존의 미의식만을 가지고 현대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이란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잡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이수종의 작품은 전통에 충실하지만 지극히 현대적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시대 장인들이 표현하고자 했던 미의식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분청사기는 해학적이고 서민의 생활감정이 잘 표현되어 있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기물도 캔버스가 되고, 화장토가 물감도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야말로 현대도자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