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박수아 _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센터 연구원
치밀한 계산과 계획, 그 결과로 얻어지는 획일화된 양산제품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어딘가 어설프고 부조화스럽기까지 한 거칠고 자연스런 질감의 항아리들은 낯설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장작가마에서 탄생한 작품은 흙이라는 재료로 성형하여 번조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도자기만이 가진 고유한 매력을 담뿍 담아내고 있다. 또한 그것이 전통적으로 장작가마를 사용해 오던 동양의 어느 도공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와는 동떨어진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 전혀 다른 문화를 누리는 서양인에 의한 작품이라고 할 때, 그것은 이질적인 두 가지 요소의 결합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유타주립대학Utah State University의 조교수로 재직 중인 도예가 제롬 다니엘 머피Jerome Daniel Murphy가 장작가마를 사용하는 이유는 표현방법의 영역이 넓다는 것이다. 즉 여러가지 방법으로 번조해 가스 등의 다른 연료를 사용하는 가마보다 작가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주병, 사발, 항아리, 티팟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특이한 점은 이 작품들이 모두 세그먼트segment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항아리를 보더라도, 단번에 물레성형으로 매끈하게 선을 뽑아낸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파트를 조합했다는 느낌을 의식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어떤 항아리는 바닥과 전이 각각 하나씩, 그리고 몸통이 3부분으로 이루어진 다섯 개의 세그먼트를 가지고 있다. 하나의 기물에 굳이 파트를 나누고 또한 그 연결선을 강조하는 방법은 흔하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세그먼트라는 표현요소의 의도를 작가는 제스쳐gesture를 나타내기 위함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그의 작품 형태에서는 어떤 특별한 성격의 표정을 읽을 수 있는데, 이 ‘특별한 성격의 표정’에 ‘제스쳐’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가 추구하는 표정은 완벽하고 세련된 느낌은 아니다. 한쪽으로 기울여 삐딱한 자세로 세워놓는다거나 어느 부분을 비틀어놓는 방법, 또한 각각의 세그먼트들을 거칠게 결합시키는 방법 등에 의해 어딘지 모자란 듯하고 불완전한 느낌을 추구한다. 그런 과정에서 얻어지는 자유분방함이 바로 ‘제스쳐’인 것이다.
그의 작품을 논하기 위해서는 주변 환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작업장은 록키산맥 근처로서,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은 작업의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집 앞의 단풍나무는 작품의 색에 곧바로 영향을 주고 그의 작품에서 붉은 색상으로 나타난다. 또한 계단식으로 정리된 언덕이나 볏짚을 모아놓은 들판, 비행기 위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이미지는 패턴화되어 작품의 표면장식으로 탄생한다.
모티브가 실제 작품으로 표현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여러 요소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앞서 언급한 장작가마번조이다. 작가의 의지와 이야기가 개입될 수 있어 선택했다고 하는 만큼 그는 태토의 종류를 다르게 한다든지, 번조방법이나 온도에 변화를 준다든지, 번조하는 횟수에 차이를 둔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작품에 있어 끊임없는 버라이에이션variation을 시도한다. 이 시도는 매우 섬세한 곳까지 이어져, 철분을 많이 함유한 어두운 색 흙의 기물과 밝은 색 흙의 기물을 바로 곁에 두고 번조하는 방법으로 두 기물이 서로에게 주는 영향의 흔적을 표현하기도 한다. 시도와 탐구의 결과는 작품의 표면에서 나타난다. 자연스런 색과 질감, 도침陶針의 흔적, 재가 흘러내리는 효과 등은 가마 안에서 일어난 우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필연적인 효과이고 또한 그것이 바로 번조과정에의 작가의 개입이 가져온 결과이다.
다분히 동양적인 느낌의 그의 작품을 보고 예상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아시아로의 여행은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 처음이라고 한다. 동양적 느낌이라 뭉뚱그려 말한 것은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비젠야키를 지칭한 것이다. 일본에서 수학한 적도, 단순한 여행을 통해서라도 일본의 생활과 문화를 경험한 적 없는 그의 작품에서 비젠야키의 느낌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더군다나 동양과 서양이라는, 그리고 전통과 현대라는 양극의 상황에서 나타나기에 더욱 그렇다. 기물을 옆으로 뉘어 도침을 받쳐 굽는 기법, 재를 흘러내리게 하는 기법 등은 비젠야키에서 주로 보여지는 특징이다. 차이점이라면 앞서 언급했던 그만의 고유한 시도와 탐구의 과정에서 추출되는 표현들이다.
전통의 고수와 계승이라는 필연적 운명을 안고 있는 비젠야키에 비해, 장작가마번조라는 요소를 그것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선택하여 이용하고 있는 머피의 작품은 어떤 것에 의해서도 규정되는 일 없는 변화발전의 여지를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러한 것이 그의 작업의 근저를 이루는 가능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약력
1977년 서울출생
2001년 홍익대학교 도예과 졸업
2005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예술기획전공 졸업
현, 홍익대학교 부설 도예연구센터 연구원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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