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랄한 상상력의
발칙한 반전!
글 윤두현 _ 독립큐레이터
신이철의 전이 열린 인사동의 가나아트스페이스에 들어선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탄탄한 드로잉과 손끝 세밀함의 조화 속에서 빚어졌음을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는 작품들이 벽에 걸리거나, 바닥에 놓여 있다. 전시공간에 앙증맞게 놓인 작품들은 발랄한 이미지들과 함께 때론 흙 자체의 자연스러운 질감으로, 또 때론 원색적인 색채의 즐거움으로 보는 이에게 적잖이 시각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하나하나의 작품들을 찬찬히 살피고 있자면, 그때까지도 발랄하게만 느껴졌던 이미지들은 돌연 태도를 바꿔 결코 유쾌하지 않은 냉소와 끈적거림으로 관람자를 향해 찬물을 끼얹는다. 작품들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적나라한 성기性器, 마치 에일리언을 연상시키는 분명한 이물감 등을 발견하는 순간 아마도 연인으로부터 갑작스런 따귀를 맞은 사람처럼, 정신은 찰나적으로 페이드 아웃된다. 문득 정신이 돌아오면, <상상력의 박제>라는 전시의 제목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는 바로 발랄한 상상력의 발칙한 반전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각각의 작품들이 돌연변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는 것을 재발견하는 그 순간부터 전시공간 내의 발랄한 줄로만 알았던 이미지들이 기실 유쾌하지 않은 어떤 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여기에까지 이르렀다면 이미 우리는 작가가 쳐놓은 빠져나갈 수 없는 덫에 걸린 것이다.
작가는 이렇듯 유머와 기괴함, 밝음과 어둠, 동화童話와 끈적거리는 탐욕貪慾이라는 이중적 요소가 교묘하게 혼재하는 이른바 이종교합적 상상력imagination으로 관람객을 농락한다. 작가의 이와 같은 이중교합적 상상력은 현재적 삶의 물질적, 정신적 환경에 대한 철저히 비판적인 인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장 보드리야르가 서구적 상상력의 현시적現時的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디즈니 랜드’를 서구적 현실의 허구성에 대한 은폐물로 규정고자 한 바를 확장시켜 볼 수 있겠다. 물론 신이철의 적당히 앙증맞은 상상의 이미지들은 ‘디즈니 랜드’처럼 은폐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제점을 노출시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번 전시의 상상된 이미지들은 무엇을 노출하고자 하는 것인가에 대한 언급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
상상력이 어떤 대상-사물 혹은 관념 등-을 전제로 한다면, 역으로 이는 그 대상에 대한 지각 및 인식과 연관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비근한 예로서 ‘스타워즈’의 상상력이 현실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전제하고 있듯이 말이다. 이와 같은 가정이 가능하다면, 작가의 상상된 이미지들은 그와 같은 지각과 인식을 돌연변이라는 표상을 통해 노출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더 나아가 작가는 이를 결코 관념적이거나 추상적인 차원의 것에 머물게 하지 않고, 보다 현실적인 차원으로 끌고 내려온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서도 멈추지 않고, 다시 한 번 우리를 또 다른 심급으로 인도한다. 젠더 혹은 동물적 성, 소수자 등의 현실적 문제에 대한 언급 내지 노출이라는 세부적 차원에서 그치지 않고, 이 문제에 대한 지각과 인식 태도의 차원에서 우리의 본질적 불합리성을 노출시킨다. 끝으로 <상상력의 박제>는 곧 은폐된 지각 및 인식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적나라한 외화라면 너무 선언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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