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와 우연이 병치된 흙의 물성을 활용한 도벽작업
상징화되지 않은 조형으로 기독교적인 주제 표현
작가에게 있어 첫 전시는 긴 행로에서 첫발을 내딛는다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자 다져온 자신의 모습을 백일하에 내보이는 것이다. 이제 첫 전시를 열고 작가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젊은 작가 이은(29)은 앞으로 전개될 자신의 작업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해도 들지 않는 지하실 작업장에서 봄을 기다리며 작업에 매진했을 이 활기찬 작가 이은은 첫 번째 전시에 대해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다.
신세대 작가 이은의 첫 전시는 대다수의 많은 젊은 작가들이 그렇듯 많은 고민의 흔적이 묻어있다. 천지창조의 과정이 담겨있는 성경의 첫장 첫 구절을 바탕으로 반추상의 조형도벽작업을 위주로 구성됐다. 기독교신자인 작가는 첫 전시이기 때문에 성경의 첫 구절을 선택했고, 동시에 천지가 창조될 당시의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자연의 이미지를 조형화해 정형화된 삶 속에서 정형화된 행복을 쫓는 현대인들에게 평온한 휴식을 전하고자 했다고 전한다. 성서의 내용을 모티브로 하면서 정형화된 기독교적 요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의 이미지를 활용함으로서 자연과 차단된 공간 안에서의 자연이 주는 휴식을 부여하고자 한다.
이은은 도예가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뭔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에게 있어 도예과에서 보낸 시간은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입시준비 때문에 뒷전으로 미뤄놓았던 만들기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는 시간이었다. 예중과 예고를 다니면서 여러 가지 미술실기를 접해보던 중 조소작업이 좋아 조각과에 진학할까 하는 고민도 했었지만 결국 그는 구성시험을 치러야 하는 도예과에 진학하기로 마음먹었다. 이후 이화여대 도예과를 거쳐 대학원을 마쳤다.
가압에 의해 의도한대로 변형되면서도, 계산할 수 없는 우연한 형태가 되는 흙의 물성을 충분히 활용한 작업은 학부시절부터 그의 흥미로운 연구대상이었다. 여기에 흙과는 이질적인 사물의 질감과 형태를 표현하는 학과 수업으로 흙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느낌과 주제로 다양한 면을 구성할 수 있다. 이런 수업이 흥미로웠던 작가는 4학년 졸업전시에서 금속의 날카로운 느낌이 강한 손톱깍기의 차가운 느낌을 흙으로 표현한 작품을 전시했다. 이 날카로움은 주제인 손톱깍기의 배경이 된 자유롭게 늘이고 부드럽게 휘어진 흙판과 대조를 이룬다.
이번 전시에서는 천지창조의 7일을 7개의 화면으로 표현했다. 빛, 물, 바다와 땅, 해와 달, 생물들, 사람, 휴식을 주제로 색감과 질감이 다른 작은 유니트가 조합된 하나의 큰 화면으로, 7개의 화면으로 표현했다. 마티에르가 강한 그림을 그리듯, 혹은 저부조의 조각 작품을 만들 듯이 얇은 흙판을 종이처럼 말거나 흙타래를 만들어 납작하게 눌렀을 때 생기는 얇고 긴 형태의 유니트들을 조합하고 두툼한 흙판을 긁고 밀고 말아 다양한 요소들을 만들고 조합했다.
“천지는 우주만물, 즉 자연을 의미합니다. 이에 맞게 흙의 물성을 살리고 비정형적인 흙의 우연성을 이용한 작업은 태초의 다듬어지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을 보여줍니다. 작품의 표현과정 중에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모습을 담아 감상자들의 마음에 진정한 자연의 감성을 불어 넣고 싶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적인 주제를 채택한 작업을 선보였지만 기독교의 상징적인 조형물이 아니라 자연물을 이용함으로써 종교인은 물론 비종교인에게도 나름의 감상을 가능하게 하고자 했다. 그에게 있어 종교적인 내용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조물주의 자연을 마음 깊이 느끼고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이 우선한다. 작품의 내용에서 내포하고 있는 것은 작가의 주관적인 종교지만 이를 느끼고 해석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감성으로 자연 그 자체를 느껴주길 바란다고 전한다.
7개의 작품 중 제6일에 창조한 사람의 형상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시니라’하는 성경구절을 주제로 삼았고 가운데 희고 크게 그려넣은 사람의 형상위로 생물을 찍은 영상을 비추었다. 이는 조물주가 사람을 창조한 후에 모든 생물을 다스리고 누리는 권한을 주었다는 성경의 내용을 표현한 것으로 작게 비춰지기 시작한 생물의 영상이 점차 확대되게 해 생물이 사람과 함께 확장되어 감을 의미한다.
첫 개인전에서는 73×139cm 크기의 7개의 중심작 외에 정사각 형태로 제작한 같은 모티브의 또 다른 제7일과 구형태의 입체 조형물을 바닥에 놓아 전체적인 전시공간을 구성했다. 이외에도 손바닥 크기의 미니어처 제7일을 여러개 제작해 소품으로 판매하기도 했다. 서울에서의 전시가 계기가 되어 프랑스의 낭뜨시청에서 지난 4월 19일부터 24일까지 정사각의 제7일을 선보였다. “예상 외로 많은 분들이 전시를 좋게 봐주었습니다. 첫 번째 전시에 우연찮게 기독교선교사가 방문해 해외 전시의 기회를 갖게 됐습니다.”
첫 전시에 대한 기대감은 누구보다도 작가 당사자에게 컷을 것이다. 다행히도 작가자신이나 여러 관객에게 어느 정도 만족스러웠던 전시회였다.
그를 만나기 전에 가졌던 첫 번째 우려는 그가 기독교적인 내용으로 작품을 한정짓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직 작품을 통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할 텐데 더욱이 규정이 많은 종교로 틀을 짓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주로 손안에서 이루어지는 누름과 펼침으로 가압된 형태들은 무궁하지만 자칫 유사한 느낌의 요소들로 지루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작품이 미숙해 보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앞으로 그가 어떤 내용의 작품으로 더 세련된 작업을 하게 될지 기대해본다.
서희영 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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