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잔으로 그린 큰 그림Tiny Cups Draw a Great Picture
글 윤태석 _ 경희대학교 부설 현대미술연구소 연구원, 미술사
19세기말 쇠라Georges Pierre Seurat, 1859-1891는 인간의 착시를 이용한 점묘법點描法을 통해 개별 색채가 갖는 특성을 존중하면서도 하나의 작품으로 귀결되는 회화의 한 형식을 구현했다. 거기에는 색채고유의 채도와 명도가 고스란히 유지될 수 있도록 작가의 그 어떠한 개입도 배제된 색채라고 하는 원형질原形質이 있다.
김지선의 이번 전시는 명제에서 분명히 드러내고 있듯 작은 찻잔들이 쇠라의 색채와 같은 군집으로 하나의 그림을 표현하고 있다. 김지선은 2,000여점의 작은 찻잔과 50여개의 말찻잔 그리고 발鉢 6점을 이번에 선보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러한 기물器物들은 마치 쇠라의 대표작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헤아릴 수 없는 색채의 묘점들이 독자성을 확보하고 어우러져 신인상주의의 점묘가 추구하는 절정의 경지에 어느 정도 도달하는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는 과정의 일치를 보여주고 있다.
그림을 구성하는 작은 잔들은 일상적인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전체와 부분을 오가며 다른 시각으로 보이게 된다.
반복적인 행위로 만들어지는 잔들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시간 속에 남기는 흔적이며 그 순간의 호흡을 담고 있는 것이다. 반복과 차이가 만들어 내는 리듬감을 큰 그림이라는 하나의 맥락으로 표현하고자 하였다.
김지선은 작업노트를 통해 ‘그릇은 반복적 행위라고 하는 일정한 프로세스를 거부한 시간을 통한 흔적이며 또한 순간의 호흡이 내제되어있는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차이가 수반된 리듬감으로 큰 그림을 형성하고자 하였다. 김지선이 말하는 큰 그림에서 리듬감은 매우 소중한 가치로 보여진다. 경남 산청과 합천을 비롯한 다양한 지역을 통해 얻어진 태토胎土는 제토되고 숙성 후 성형되는 일반적인 과정을 거쳐 작가의 호흡이 가미되며 김지선만의 아우라Aura가 이입된다.
김지선이 추구하는 이 아우라의 말단에는 시각적 형상체인 찻잔이라고 하는 원형圓形의 본질적 물질구조가 사각구조四角構造-사각구조인 갤러리로 또는 김지선과 그의 그릇을 알리는 네모난 도록이나 그의 작품을 일정한 규범에 존재하게 하는 사각의 좌대座臺와 찻잔장 등-로 변화되는 다시 말해 익숙한 가치로의 변용인 것이다.
사각구조 즉, 그릇에 작가의 시간 속 흔적과 순간의 호흡이 깊숙이 개입되어 사람과 사람, 다른 세계와 자기我를 연결하고 있으며 표피에는 사각-또는 그림-이라고 하는 가치적 규범을 통해 소통하고자 하는 작가의 가교적 의지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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