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의 익숙한 형상들
글 최웅철 _ 웅갤러리 대표
2001년도 개인전을 마지막으로 4년만에 선보인 문지영의 이번 전시 작품에서 사뭇 달라진 형상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작가의 생각과 흙을 대하는 기본정신이 달라진 것이 아니고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기본인 조선백자의 넉넉함과 단아함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회에서도 볼 수 있는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폭 넓은 그의 시각이 충분히 반영되었다고 본다. 초기 그의 작업에서는 조선시대 안방에서 주로 사용하는 나비 문양이나 모란 문양 등 극히 여성적 취향이 강한 작업을 주로 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원초적 형태와 질감으로 시골집의 질박한 흙담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우리네 선조들은 모든 자연물들의 필요에 의해서 획일화된 일정한 형태를 만들지 않고 자연물이 지닌 절대모양을 최대한 살려 모난 모서리만 툭툭 쳐서 돌절구나 물확石碻의 형태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받은 것을 언제든지 다시 자연 안에 다시 돌려놔야 한다는 선조들의 생각이었으며 자연을 인간이 지배한다는 생각보다 자연 안에서 순응하며 자연 안에 동화되려고 했던 우리 선조들의 사고였던 것이다. 이번 전시회의 문지영 도자기를 보면 그런 선조들의 사고와 조선백자의 형식뿐 아니라 정신도 살아 숨쉬고 있다. 거칠고 질박한 그의 도자기 표면에서 작가의 자유로운 사고를 읽을 수 있으며, 깎고 파고 두드린 형상에서 작가에 순박한 삶과 소박한 아름다움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왠지 낯설지 않은 그의 도자기 앞에서 조선 선비 정신의 단아함과 순수하고 절제된 단순함이 오랜 세월 잃어버린 기억을 찾은 듯한 반가움에 시선이 머문다. 우리 주위의 익숙한 형상이 편의 위주의 산업사회에 밀려 사라지고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여겼던 그 아름다움이 사라진게 아니라 이렇게 마음 한구석에 살아남아 정겹게 반겨준다.
작가는 우리 백자의 넉넉한 자태와 생동감 있는 필치 그리고 꾸미지 않은 무심함이 좋아 이런 백자의 특성을 옮겨보려 노력했다고 한다. 무엇이 아름다운 물건인지 어떤 것이 옳은 작업인지 항상 고민하면서 그는 작업에 임했고, 그 그릇들이 그저 놓여진 사물이 아니라 생활 안에서 사용되며 잘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한다고 했다. 그러한 작가 소망이 우리네 식탁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또 다른 작업으로 우리 곁에 와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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