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강재영 _ (재)세계도자기엑스포 비엔날레운영부 국제전시팀장
제3회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의 주요 기획전인 세계현대도자전 《횡단하는 도자예술의 경계 Trans-Ceramic-Art》는 1990년대 이후 다양하고 활기차게 전개되어온 국제 도자예술의 현 단면과 발전적 미래를 조망하기 위한 전시이다. 유럽 미주 아시아 한국의 도예가와 현대작가 30명이 참가하는 이번 전시는 도자 영역의 확장과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계기를 마련코자 기획된 것이다. 전시의 개념과 구조, 주요 출품작들의 해설을 통해 비엔날레 하일라이트인 세계현대도자전을 미리 살펴보자.
도자예술이 횡단한다?!
최초의 예술 작품은 흙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모든 문명권에서 흙으로 그린 그림과 흙으로 빚은 조각은 미술사의 첫 머리를 장식하고 있다. 다양한 문명과 오랜 전통 속에서 다듬어진 도자의 역사는 인류의 삶과 문화를 반영하는 증거품이 되었다. 그러던 것이 산업혁명을 맞으면서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수공적 장인성에 기초한 도자공예가 산업화되고 기계화되면서 한낱 상품으로 전락한 것이다. 이때부터 순수예술과 공예의 깊은 간극이 발생하게 되었다. 산업혁명의 경제적 가치관과 인간중심주의를 내세우는 프랑스대혁명의 도덕적 가치관의 세례 아래 형성된 모더니즘 미학에서 이러한 구분은 더욱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
20세기 모더니즘의 길고도 다채로운 터널을 통과하며 도자예술은 단순히 장식미술로서 또는 석화된 전통의 이름으로 순수미술의 하위 장르로 간주되었다. 건축의 장식이나, 쓰임을 목적으로 하는 용기, 모델링 작업으로서 도조는 조각의 제작과정 정도로만 치부되곤 했다. 도자예술이 이러한 모더니즘의 질곡에서 벗어나 독립된 표현의 매체로서 독자적인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미국 현대 도예가들의 역할이 컸다. 현대미술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지면서 추상표현주의 사조가 확산되고 그 영향으로 피터 볼커스를 비롯한 미국의 도자계는‘점토혁명’을 통한 도자 표현의 자유와 새로운 도자 문화의 시대를 열게 된 것이다. 동시대 현대 미술의 경향과의 결합과 충돌 속에서 도자 예술은 도자라는 매재의 재료적 기술적 한계를 극복하고, 도자만의 표현 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이제 현대 도자예술은 미국 도자의 점토혁명 이후 50년이 지났다. 1990년대 이후 포스트 모던적인 사유와 급속한 정치 사회적 변화는 문화 예술계에도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자본주의화가 가속화되었고, 단일국가를 사유 단위로 하는 인터네셔날리즘에서 전 지구를 하나의 사유 단위로 삼는 글로벌리즘으로 확장되었다. 인터넷의 발명으로 인간의 삶이 가상현실로까지 확장된 것도 이때부터이며, 문화 방면에서는 단일 장르 내부에서만 진행되던 형식파괴가 이질적인 장르사이의 장르파괴로까지 확대된 시기이기도하다. 이러한 영향으로 현대 도자예술은 이제 더 이상 전통적인 장인정신과 도자예술만이 가진 장르적 오리지날리티로 설명될 수 없다. 다양한 양식과 기법들과 섞이고 더 나아가 이질적인 장르들이 도자를 매개로 무수히 교차하고 충돌하는 현장이 동시대의 도자예술이다. 이를 통해 고전적인 도자의 울타리가 파괴되었고, 도자 예술의 다양한 지역적이고 역사적인 맥락들이 일상과 문화 전반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과 도전들을 통해 도자예술은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자유롭고 활기차게 우리의 삶 속에 살아있다.
이번 전시 제목에서 반영하듯 는 횡단하는 도자예술의 경계를 탐색하여 현대 도자 예술의 새로운 도전을 보여주고자 한다. Trans는 ‘가로지르다’, ‘횡단한다’ 등의 의미로 도자를 중심으로 Craft와 Art 사이를 넘나들고, 전통과 미래, 리얼리티와 가상의 현실을 넘나드는 창조적 상상력의 세계를 상징한다. 이는 현대미술의 아웃사이더 내지 하위문화로 폄하되었던 도자 예술을 현대 예술의 중심과 주류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이다.
글로벌 문화 속 도자예술의 화두
이번 전시는 1990년 이후 도자예술이 지닌 매재Medium의 힘과 변모하는 문화적 상황 속에서 도자 예술의 화두를 찾는 기획이다. 도자를 중심으로 회화, 조각, 설치, 영상을 응용한 도자 예술의 확장된 표현 양식은 개인과 일상, 전통과 역사, 사회 참여적인 담론들을 내포하고 있다. 단순히 색과 형태의 형식적 미학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의 기법을 탈피한 새로운 매체 실험과 개인의 정체성과 일상의 변형, 역사, 문화, 정치 등 사회 참여적인 문제까지를 다루고 있다.
매재를 넘어
전시의 구성은 5개의 주제로 나뉘는데, 첫 번째 주제인, <매재를 넘어Beyond Medium>는 도자 영역 확장이라는 형식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전시의 인트로를 장식한다. 번조하지 않고 점토와 철사, 아교만으로 제작한 실제 사이즈의 자동차(크리스틴 모긴 / 미국), 재료의 자유자재의 변형을 통한 도자 설치(피에트 스톡만 / 벨기에), 용기 형태를 오버랩하여 일루젼의 효과를 사운드와 함께 극대화시킨 3D 컴퓨터 그래픽(그래그 페이스 / 캐나다), 유기적 형태의 도자 조각 위에 영상을 투사하는 작품(시나사 쿠켁) 등 재료적 한계를 넘으려는 시도와 도자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재해석으로 최근 현대 도자 예술의 커다란 변화의 진폭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구성된다.
몸의 은유
두 번째의 주제는 디지털혁명 이후 인간의 몸에 대한 사색이다. 모더니즘의 자아, 주체가 사라진 곳에 자리 잡은 사이보그, 신체는 인간중심주의와 사이보그적 미래를 연결하는 통로이다. 여기에서는 무한한 상상의 소재로서 몸이 지니는 상징성과 개인의 정체성, 사적이면서도 내밀하고, 실제와 환상이 소통하는 몸의 담론들을 읽어낼 수 있다. 작고 정교한 형태와 유희적인 유약의 발색으로 무의식 세계 속의 몸의 은유(캐티 버틀리 / 미국)와 인간과 동물의 형태를 결합 사이보그적인 상상의 몸(리자 클레이그 / 미국), 인간과 이를 둘러싼 환경, 그것의 관계를 타일 구조의 집과 작은 조각상들로 제작된 작품(크리스티나 돌 / 독일), 병리학적 신체의 변이와 소외된 인간을 형상화한 작품(팁 톨렌 / 미국) 등이 출품된다.
일상의 시학
세 번째 주제는 전통적으로 도자 예술이 지녀온 가정적이고 친숙한 이미지들에서 벗어나 세라믹의 역사와 전통을 융화시키고 때론 전복시키는 일상성에 대한 고민들을 담아낸다. 해학적이면서도 중층적인 의미로서 오늘날 도자예술이 지닐 수밖에 없는 양면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의 언어들이다. 장간남, 인형 등 동심을 자극하는 거대한 오브제 제작(마이클 둘란 / 호주), 그릇, 기념품, 장식품 등을 모티브의 해학적인 표현(리차드 슬리 / 영국), 정지된 순간을 포착 드라마틱한 장면을 묘사(엘리스 시걸 / 미국)하는 등 일상의 기물, 주변 환경의 일상의 모습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역사, 전통 그리고 문화
다양한 지역적 공간과 시간들에 녹아있는 전통들에서 추출된 작품들이 네 번째 주제군을 이룬다. 음식 문화, 전통, 관습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버릴 수 없는 전통 문화의 요소를 차용, 변형하여 현대적 문맥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들이다. 고전의 재해석과 변형을 통한 도자 표현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작품(마렉 세쿨라 / 폴란드), 전통 도자의 기법을 이용하면서도 음식, 관습, 욕망에 대한 사회 문화적 코드를 드러내는 작품(류 지엔 화 / 중국), 키보드, 마우스, 신용카드 등을 퍼스펙스로 고정하여 박물관의 화석 전시품을 연상시키는 2005년도의 인공 도자 화석(클라우스 도미네 한센 / 덴마크) 등은 오늘날의 문명과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드는 역사적 시간의 문제와 유물이 지닌 사회문화사적 의미를 묻고 있다.
포스트글로벌 사회
마지막의 주제인 <포스트 글로벌사회>는 전지구적 관점에서 자국주의와 국제화 사회의 혼재된 문화양상을 주제로 정치, 사회, 미디어 등 사회참여적인 요소를 표현하는 작품들을 소개된다. 다문화주의의 사회상을 풍자하며 인간, 동물 형상들을 기괴하게 조합해 쌓아올린 대형조각(여선구 / 한국), 188개국의 흙을 유리병에 담아 설치하고, 세계의 흙을 모아 만든 만다라 조형물, 흙을 채집한 전 세계의 참가자들의 기록물을 다큐멘터리화한 작품(닐 테트코브스키 / 미국) 등이 소개된다. 특히 이번 전시의 특별코너로 안토니곰리의‘아시아의 땅’이 별도의 공간(이천세계도자센터 지하)에 설치된다. 테라코타로 만들어진 점토인형 19,000여점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미술과 사회, 작품의 환경, 지역 공동체, 다수 대중의 공동 작업 등 광범위한 이슈들을 제기한다. 붉게 구워진 점토인형들의 장Field은 인간의 피를 상징하며, 국경를 넘어 아시아의 영토적 규모를 형상화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흙이라는 매재가 지니는 원초적인 힘을 형상화하는 기념비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새로운 시작
현대 도자 운동 이후 약 50년. 빛의 속도로 순환하는 물질문명의 환경 속에서 도자예술은 보다 문화적이고 정신적인 차원에서 또 다른 비약을 꿈꿔야 한다. 이번 전시는 현대도자가 표현할 수 있는 극한에 도전하는 작가와 작품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횡단하는 도자 예술의 경계Trans-Ceramic-Art>는 다양한 삶과 문화를 새롭게 해석하고, 시공간과 장르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현대 도자예술의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및 동대학원
환기미술관 큐레이터(1995-1999)
문예진흥원 큐레이터-일본 아이치현미술관 연수(1996)
미술평단 기자 역임(1995-1997)
<젊은 작가들을 위한 한국미술의 검증과 모색><한국호주교류전-센스> <황해의 동쪽> 등
20여개의 국내외 기획전 큐레이팅
현,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 국제전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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