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5 - 2004.12.21 통인화랑
창밖으로 떠오르는 일상의 ‘쉼休’
글 정희균 _ 미술학 박사, 동덕여대 초빙교수
서울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인 남양주의 구암리는 도예가 문성온의 집과 작업실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녀는 두 자녀를 둔 주부이자 동시에 도예가로서의 생활을 어언 5년여 꾸려가고 있다. 이번 전시에, 그녀는 이제까지의 다소 추상적인 형태의 조각적 도예작업이나 다색채의 기器 작업과는 달리, 자신의 일상과 그 단편들을 담은 분청사기를 선보였다. 이러한 배경은, 작가가 ‘구암리에서의 일상’이라는 소박한 내용을 ‘분청사기’란 형식에 연계시킨 단서와 조형의식의 변화를 제공한다.
작가가 담고자 한 ‘일상’이란 바쁜 일과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이를테면 아이들을 서둘러 등교시간에 맞춰 보내고 난 후 차분히 차 한 잔 하면서 맞이하는 내면적인 일상이라 할 수 있다. 비록 온갖 감정과 일과들에 뒤섞인 일상이지만, 마치 물속의 부유물이 가라앉고 나서야 투명해진 물의 저편이 보이듯이, 자신이 내면에 희망하고 그리는 바를 비로소 보게 되는 의미로서의 일상인 것이다. 이는 그녀가 품어왔던 그간의 전통적 조형에 대한 반발적인 조형의식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섬이며, 동시에 더 보탤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의식을 다시 보게 됨을 의미한다.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때로는 자유로이 유영하고픈 물고기나 식물의 열매, 혹은 산과 구름 같은 구상적 대상에 투영되어 나타나기도 하며, 때로는 비정형적인 형태의 기형을 통해 추상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는 이전의 작품이 지녔던 개인적이고 적극적인 조형표출의 의지에서 보다 보편적인 형식과 수용에의 관심을 향한 변화 속에서의 형상화라 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서정과 정감이 어린 관조적 작품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관조적 일상성을 분청사기의 형식에 담고 있다. 논리적인 조형 해석의 과정에서 분청이 선택되었다기보다는 오히려 일상의 순간순간에 떠오르는 이미지와 작가의 기호적 형상을 아울러 표현하기에 적절하다는 감각에서 시도된 듯하다. 대체로 분청사기는 백자 등이 지닌 제작의 기술적 난해함으로부터 비롯되는 이성적인 조형감각과는 달리, 보다 자유롭고 넉넉한 제작과정과 형식을 허용한다. 때문에 분청작품은 보는 이를 긴장시키기보다는 후덕하고 친숙한 아주머니의 표정처럼 감정을 누그러트린다. 그러한 분청의 수용적 특성은, 문성온에겐 그대로 ‘구암리의 일상’을 담아내는 조형적 ‘그릇’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작업의 모티브가 흐려지기 전에 서둘러 형태화 하려는 듯이, 작품의 제작도 축축한 도판을 쌓아 올려가며 신속히 그리고 즉흥적 감각으로 이뤄진다. 작품 전반에 남아있는 제작상의 물리적 흔적과 구상적 소재들이 작가의 솔직하고 자유로운 심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분청작업이 도예가에게 항상 자유로운 표현을 가능케 하는 후덕하고 수용적이기만 한 영역은 물론 아니다. 예컨대 조선조 분청사기의 철화와 백화장을 비롯해 문양과 기능 및 형태에 이르기까지의 그 고전적 양식의 범위에 부지불식간에 빠진 관습적인 제작의 예를 흔히 보게 되듯이, 오늘을 영위하는 자신의 해석과 제작방식에 바탕한 개성적인 작풍作風이 배태되지 못하면 어느새 전통을 가장한 덫에 걸려들 수 있음도 사실이다.
새로운 작품의 시도를 과거와의 단절에서 보기보다는 오히려 그간의 조형적 모색과 삶 속에서 이른바 변증법적으로 작용된 것으로 볼 때, 문성온의 다양한 시도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나타날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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