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6 - 2004.1.5 가나아트센터 1층
하나되는 방법의 깨달음
글 우관호 _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교수
언제부터인지는 뚜렷이 기억나지 않으나 임미강의 작품은 특별한 기교나 기법을 배제하고 흙의 침착한 재질감에 의한 자전적 인체가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형태 또한 좁은 어깨와 가는 목의 절제된 포름을 견지하고 있으며 얼굴은 없거나 있더라도 유기적인 오브제의 형상이 대신하고 있었다.
이번 작품들 역시 그동안 그가 만들어 왔던 인체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팔이 달린 것들도 있으며 임신한 듯한 배를 가진 것들도 있다. 재료 또한 점토 외에 닥펄프를 사용하는 등 한층 탐색의 범위를 넓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임미강의 작품에서 개인적으로 느껴왔던 침잠한 이미지는 이번의 전시회를 통해 보다 확장된 세계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가 즐겨쓰는 철판을 배경으로 또는 바탕으로 인체들은 언제나 처럼 같은 자태로 있지만 그 앞에는 이런 저런 새로운 오브제들이 등장하여 깊은 교감의 장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팔이 있는 인체들은 무엇을 주장하거나 움직이는 동작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늘어뜨려져 있으며 담담하게 펼친 손에는 사과 또는 모과로 짐작되는 것들을 올려놓고 있다.
다른 한 편의 인체는 나락을 담은 그릇들을 정렬시켜 놓고 있거나 탄화된 듯한 질감의 사과를 담은 자배기를 마주보고 있다. 그러나 나락을 담은 그릇과 사과를 담은 자배기의 인체들은 그 모습이 다르다. 전자는 임미강의 원래 인체이지만 후자의 경우는 부른 배를 가진 여인의 모습이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면, 후자 즉 수확이란 명제의 작품은 보이는 그대로 생명을 잉태한 여자의 모습이며 앞에 놓인 사과는 여성성을 상징하는 매개체라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임미강의 작품들은 복잡하거나 우회적 또는 역설적인 아우라를 추구 한다기 보다 작가 자신의 일상을 그려내는 솔직함이 돋보이는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2월의 만찬>이라는 대주제에 대한 작가의 소회는 사뭇 숙연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듯 하다.
“인생의 중반 이제 별 기대도 어떤 꿈을 위한 막연한 희망이나 열정도 없는 건조하고 아득한 일상의 외로움에서 전환을 맞게됐고 그 고비를 넘어선 나를 위한 만찬을 차려보고 싶었다. 새로운 내 인생의 후반기를 위한 만찬을…”
이 고백에서 우리는 중년을 넘어가는 작가의 삶에 대한 성찰을 읽을 수 있는 동시에 예술이 삶을 이루는 하나의 방식으로서의 기능 뿐 아니라 명징한 관조적 도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란한 기교와 기법, 변질된 아이디얼리즘 등의 추구보다는 오랜 작업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과 하나되는 방법이 무엇인지 깨달은 좋은 사례를 임미강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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