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전신연 _ 도예가
필자는 10월의 마지막 주말 뉴욕의 화랑가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소호, 첼시, 5
번가 근처의 수많은 갤러리 등을 보며 과연 뉴욕은 세계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미술시장에서도 큰 흐름을 주도하는 선두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이제부터 인상깊은 세라믹 작품들을 전시하는 전시장 가스 클락 갤러리Garth Clark Gallery를 소개하고자 한다.
뉴욕과 롱아일랜드시티 두 곳에 전시장을 가지고 있는, 가스 클락 갤러리Garth Clark Gallery는 미술비평가이면서 아트상으로 잘 알려져 있는 가스 클락이 디렉터로 있는 갤러리이다. 이 갤러리에서는 지난 10월 라는 제목하에 작고했거나, 현존하는 최근의 30여명의 세라믹 아티스트들의 작품 중 인간의 벌거벗은 인체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전시했다. 전시회에는 인간의 벗은 육체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작품들도 있었고, 그와는 반대로 보일 듯 말듯한 형상을 붓으로 표현하거나, 전체적인 형상을 은유적으로 일그러뜨리고 찢긴 모습으로 나타낸 것들도 있었다.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개개인의 탁월한 상상력, 예술성, 차별화된 독특한 기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재료와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토기, 석기, 포슬린 등을 사용하고 그 위에 화장토, 유약, 스테인 그리고 전사 기법과 같은 다양한 도자 예술재료를 써서 그들의 예술 세계를 표현하고 있었다.
먼저, 사진 1은 파오로 마요네Paolo Maione의 저온 번조의 슬립 캐스팅 작품인데 길게 누워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남성의 누드, 술통 위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동물의 형상을 나타내고 있다. 이태리 작가인 그는 동물과 사람의 특질을 우화적으로 표현한다. 즉 옛날 이야기나 이솝우화 같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 예를 들면 사람이 나귀가 된다거나 당나귀가 사람이 되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그만의 풍자적인 해석으로 작품화 시킨다. 이 전시회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 전통적 캐스팅 기법을 써서 실제 사람과 동물을 축소한 것과 같은 리얼리즘적 요소가 강하게 느껴지지만 그 너머에는 무언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증을 낳게 하는 내러티브한 성격을 지닌다.
커트 와이저 Kurt Weiser는 포슬린 슬립 캐스팅한 뚜껑있는 비대칭적 형상의 항아리에 차이나 페인트를 사용하여 마치 18~19 세기 유럽 명화를 3D작품으로 감상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작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세라믹 작품 표면에 그린 그의 그림은 보통의 이차원적 사실적 유화와는 달랐다. 갤러리 측에서 준비해 놓은 작품 밑의 턴 테이블을 돌려가며 보니 모든 방향에서 그의 그림과 물결치듯 역동적인 항아리의 비대칭적 형상이 조화롭게 어울리고 있었다.(사진 2) 그것은 이차원적 그림에 익숙한 보통의 작가들의 수준을 뛰어넘는 훌륭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덕 잭 Doug Jack은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교에서 교수로, 미국 현대 도자조소, 믹스 미디어 작가로 아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남자 인체 세라믹 조소 작품에서 필자는 역동적인 휴먼파워와 더불어 접히고 왜곡되고 잘려진 인체에서 그의 사람 형상에 대한 해석을 읽을 수 있었다.(사진 3, 2004년도 작품) 또한 1998년도에 제작된 그의 사람 형상은 부러지고 잘려나간 코나 다리 그리고 다시 접합한 부분을 고친 그대로를 남겨 두어서 마치 신고전주의적 작품 즉 오랜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산화되고 잘려나간 조각품들을 보는 듯 하였고 또한 고대와 현재가 한 작품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최근 들어 여러 잡지들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은 믹스 미디어적 성향을 강하게 풍긴다.
미국의 현대 철 조각metal welding sculpture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데이빗 스미스David smith의 세라믹 작품들을 보면 이미 한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작가가 다른 영역(재료)의 아트 세계에서 그 재료들을 어떻게 소화하여 표현해 내는 지를 알 수 있다. 전시장에는 작가가 생애 말기에 작업한 세라믹 작품들 중 여인의 누드를 반 추상화 한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사진 4) 화장토 위에 손이나 도구로 자유롭게 드로잉한듯 새긴 판 성형 작품과 더불어 13.75인치의 두 개의 접시에 여인의 옆 모습을 실루엣처럼 남긴 채 주변을 산화물로 색칠한 재미있는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당대의 거장 마티스, 피카소, 고갱 등이 세라믹을 포함한 여러 영역을 넘나들었듯이 그도 한 분야에만 안주하지 않는 무한한 도전정신을 가진 듯 했다.
헝가리 아티스트인 라즐로 피케테Laszlo Fekete, 그의 2001년도에 제작된 반입체 표현주의적 벽걸이 여자 흉상들을 보며 필자는 이 작가가 ‘강한 무엇인가를 직접적이면서도 시각적인 언어로써 관객들에게 호소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선 빨간 저온의 글레이즈를 사용하여 마치 얼굴부터 배까지 피로 바른 듯한 표현에서 감당하기 힘든 강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스탬핑기법으로 찍혀진 수많은 말들과 광고문구 같은 것들은 해체되었다가 다시 엮어 붙인 것 같은 모양으로 구성되어, 사회적으로 전통적으로 구속된 채 살아가는 여성의 몸을 작가가 표현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사진 5) 라즐로 피케테는 동유럽 공산국가인 헝가리에서 반세기를 살아 왔는데, 몸소 겪은 정치, 경제, 사회적인 문제들을 조금은 냉소적이면서도 직접적인 언어로 도자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해오고 있다고 한다. 직접 작가로부터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필자는 관객의 입장에서 그의 두 개의 작품으로부터 페미니즘과 표현주의적인 20세기 미술운동을 느낄 수 있었다.
여기에 지면 상 예로 들지 못한 흥미로운 작품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다음 호에서는 R. Duane Reed Gallery에서 볼 수 있었던 루디 오티오Rudy Autio, 노이 볼코브Noi Volkov, 파멜라 언쇼 캘리Pamela Earnshaw Kelly 등 4~5명의 현대 세라믹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해 보겠다.
사진 1. L’Uomo Che Era Morto, 1996, Ceramic, Edition #4/4, 11.5”x20.25”x 6.5”
사진 2. Caucasia, 2001, Porcelain, 16.5”h x 12”w
사진 2-1. 사진 2를 뒤로 돌린 모습
▲▼ 사진 3. Blunt Object, 1998, Porcelain, 12.5”h (위)
Hercules Decanter, 2004, Porcelain and Mixed Media, 10.5”h (아래)
▲ 사진 4. Plate with Nude, 1964, Stoneware, 13.75” Diameter(왼쪽), Plate with Nude, 1964, Stoneware, 13.5” Diameter(오른쪽)
▼ 사진 5. Traced Face, 2001, Colored Clay, 20”h x 15”w(왼쪽), Rather Drink Blood, 2001, Colored Clay, 22”h x 16”w(오른쪽)
필자약력
이화여대 미술대학 동양화과 졸업
미국 메릴랜드 프레데릭 후드 대학원 도예과 졸업
현, 메릴랜드주 그린벨트시 커뮤니티센터 Artist in Residence로 활동 중
shinye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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