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27 - 2004.11.2 갤러리 아트사이드
과정으로서의 유랑
글 윤두현 _ 독립큐레이터
예술은 무엇인가? 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사실 의당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결코 없다. 아니다, 답은 결국 질문하는 과정 속에 분명히 있다. 왜냐하면 괘변일 수도 있겠지만, 과정 자체로서 예술은 유의미하며 또한 과정으로서 예술은 그 존재 이유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논지는 조금 다르나 “무용하지만 주변의 건강성을 확인해주는 것이 예술이다”라는 어느 소설가의 말도 얼마간 이에 근거한다고 유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작가 이헌정은 과정을 사유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그는 과정을 위해 끊임없이 유랑한다.
이헌정의 개인전 이 갤러리 아트사이드에서 열렸다. 그간의 예술에 대한 자유로운 사유의 여정을 통해 작가는 도예라는 한정적인 울타리를 벗어나고자 했으며, 실제로 이전의 작업들은 대부분 그를 도예가보다는 설치미술가나 개념미술가로 보아야 할 만큼 다변적인 경향을 보여주었다. 지난 11회 개인전 도록의 서문을 잠시 참고하면 그런 이헌정의 작업을 김찬동은 “연금술과 유목적 사유의 여정”으로 보았다. 더불어 그는 작가가 구체적인 작업에 있어서 “흙, 얼음, 물 등의 근본적인 질료뿐만 아니라, 일상적 오브제 등과 같은 다양한 매체실험을 추구”하고 있음을 밝혔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전의 작업 경향과 달리 이번 12번째 여행에서 작가는 어느덧 도조와 도자평면을 주로 선보이며 자신의 배를 도예의 포구에 정박시키고 있다.
우선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크게 도조, 항아리를 비롯한 전통기물, 도자평면 등의 세 가지로 나뉜다. 도조 및 도자평면 작업은 매우 유연한 원색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이전의 작품성격이 대체로 호불호를 떠나 설치작업 위주의 관념에 억눌린 듯 일견 강박적으로 무거워 보였던 것을 떠올린다면 매우 눈에 띄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전시된 작품들의 전체적인 느낌 역시 매우 경쾌하면서도 차분하게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만만치 않은 규모감을 보여주고 있는 비사실적인 인물도조들과 색면추상을 연상케하는 도자평면 작품들은 인상적이면서도 몰입을 강요하지 않는 편안함을 준다.
어쩌면 혹자들은 작가의 이와 같은 변화에 대해 너무 가벼워졌다든지 혹은 대중의 요구에 타협했다든지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를 꺼리지 않을 수도 있을 듯 하다. 사실 필자 역시도 처음엔 그와 같은 혐의를 둔 바 있다. 이 지점에서 그와 같은 혐의가 여기서 과거형으로 기술되고 있는 이유를 해명하기 위해서라도 논점을 다시 서두로 환언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도 언급한바 있듯이 이미 예술에 있어서 마땅히 어떠해야할 결정론적인 방향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보다 이헌정의 작업 도정의 정박지가 어디냐라는 것과 함께 그 지난한 과정을 살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작업 여정만으로 결과물에 대한 어떤 판단이 전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이 역시 결국에는 각각의 선택에 따라 판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