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풍요를 지향하는 온화한 미소
글 최태만 _ 미술평론가
아담한 크기를 지닌 김은현의 도조를 보노라면 무심한 아름다움이란 것을 느끼게 된다. 이때 무심한 아름다움이란 꾸미지 않은 소박함에의 동화란 측변을 주목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공적인 것을 최대한 배제하고 작업과정에서 우연의 결과를 수용함으로써 작품에 자연스러움이 배어나도록 질료의 성질에 순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진 형태적 특징으로 흙을 반죽하는 과정에서 공기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을 차단하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흙덩어리를 치댄 결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형태를 다듬지 않고 그것에 충실하여 최소한의 얼굴형상만 나타나도록 손질을 가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손아귀에 들어오는 정도의 규모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 형태의 요철은 물론 중량 양감 질감 등을 촉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작품에 내재한 고유한 가치, 곧 그의 작품이 지닌 미적 특질이다. 김은현의 작업에서 우리는 잔잔하면서 고요한 미소를 발견할 수 있다.
이 은근한 미소는 서삼 마애삼존불상이나 경주 삼화령에서 발굴된 미륵삼존불상에서 볼 수 있는 천진난만하면서 해맑은 미소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고 보니 그가 만들어 놓은 얼굴은 대부분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부처나 보살을 닮아있다. 어떤 작품은 금동보살반가사유상의 온화하지만 깊은 명상에 잠겨있는 표정을 떠올리게 만들고 또 어떤 것은 이름없는 장인이 오로지 불심으로 조성한 이른바 민불의 고졸하지만 넉넉한 미소를 연상시킨다. 표현의 절제를 통해 인위성을 최소화한 결과 형태는 단순·소박하지만 원만한 표정을 통해 조화와 안정이란 미적 특질은 물론 관용과 배려란 종교적 차원의 의미는 더욱 집중적으로 고양된다.
작가의 손 압력이 작용한 결과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뒤통수 부위나 혹은 흙의 중량에 의해 바닥에 눌려 평탄해진 부분을 다듬지 않은 형태는 흙의 가소성을 잘 살린 결과로서 이 또한 작품에 장식적 요소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차단하고 있다. 만약 그의 작품에서 굳이 장식적 요소를 지적한다면 얼굴의 관자놀이나 머리카락 부위에 새겨놓은 문양 정도일 것이다. 이것은 그의 작품들이 종교적 관심으로부터 출발한 것임을 알리는 표시일 뿐 장식 욕구의 발로로 보이지는 않는다.
작가는 거의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러한 얼굴을 제작한다. 그녀에게 흙은 밀가루처럼 일용할 양식일지 모른다. 그것을 반죽하는 과정은 가족에게 제공할 음식을 조리하는 과정과도 상통한다. 그러나 멋을 부리기보다 재료의 특성을 최대한 존중함으로써 감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신선한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작업 또한 호들갑스럽고 교조적인 신앙을 증명하기 위한 고백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일상의 한 부분으로 그의 생활 한 부분으로서 그의 생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헌신의 정신을 되새기곤 한다. 그런 점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한 것은 이 작고 소박한 형태를 통해 아름다움의 신전에 바치는 봉헌물을 제작하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이 이처럼 소박하지만 진지하기를 기도하는 태도의 소중함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예술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역시 종교와 맞닿아 있음을 그는 이러한 일상의 과정을 통해 체득하고 있는 지 모른다. 원대한 세속적 성취가 아니라 일상의 평화로운 자기반성에서 마음의 풍요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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