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항렬 _ 청강문화산업대학 리빙세라믹디자인과 교수
흔히 교육을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들 한다. 인재를 키우는 일은 국가와 사회발전의 초석이며 그 영향이 심원하기 때문에 백년 앞을 내다보는 큰 계획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일 것이다. 필자는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교육현장에서 그동안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을 토대로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우리의 도예교육 중 기술 분야에 대한 것들을 나름대로 분석하여 보고자 한다.
우리의 대학 도예교육을 다시 돌아보다
대체로 우리나라 대학의 도예교육은 평면과 입체의 조형 감각을 기르기 위한 기초소양 교과목과 도예분야 각 장르의 기법을 체득하기 위한 세분된 전공교과목으로 크게 이분된다. 각자의 적성을 고려하여 전공분야를 선택하면 2년제는 대체로 1년, 4년제는 길어야 3년을 넘기지 않는 기간 동안 전문적인 도예교육을 받는다. 물론 대학원 과정도 있으나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각 대학들은 2년제와 4년제의 구분을 막론하고 이 분야의 전문인을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각기의 학풍과 더불어 대동소이한 교육프로그램으로 운영한다. 학생들은 졸업 후, 전공과 관련된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며 생존을 위한 경제활동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므로 이미 활동 중인 사람들과의 경쟁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 방법이 전시회와 작품 판매를 통한 방법이든, 생활도자기를 만드는 일이건 간에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겠지만 결국 ‘생존’에 관한 문제이다. 물론 장르의 특성상 졸업과 동시에 전문적인 자질을 보유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전공인으로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추었는지는 의문이다. 결과적으로 졸업생의 많은 비율이 본인의 전공과는 크게 관련 없는 직종에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이러한 사실은 본인의 의지와 계획 등 여러 면을 아우르기 때문에, 도예에 있어서 단지 기술적인 면에서의 완성도가 경제적 활동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기술’은 작업의 프로세스와 결과, 그리고 취업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더불어 상당한 기간 동안 우리의 도예교육은 ‘기술과 조형감각의 균형’이라거나 ‘전통과 현대의 조화’라는 본질적인 목적에는 접근하지 못하고 현대도예 분야의 편협한 양적 팽창에만 몰두해 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대학교육에 있어서도 여전히 우리 전통도예의 계승과 발전이라는 과제는 남아 있으며, 도예가로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술경쟁력을 갖춘 졸업생 배출은 교육자가 지속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인 것이다.
수련 혹은 연수라는 일련의 과정은 기술정보의 습득과 현장 경험을 통해 실무적인 면을 강화시키므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대학교육에서는 이러한 수련과정을 졸업 후로 미룸으로써 현장에서의 부적응이나 심하게는 해당 분야 취업 포기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실무자의 직접 교육이나 교육 기간 중 실무경험을 쌓게 하는 것 등이며, 이러한 과정을 학제 내로 끌어 들이는 방법이 있다.
필자가 소속된 대학에서는 재학 기간 중 한 달에 걸쳐 현장실습을 해야 졸업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학생 본인의 선택에 따라 업체를 정할 수도 있으며, 학교에서 추천하기도 한다. 한 달이라는 기간은 결코 길지 않지만 학생들은 각기의 체험과정을 통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더 전문적인 정보, 공방이나 회사의 운영체계 등을 익히고 목표의식을 분명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장려할 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체로 대학의 전문기술 관련 교과목을 살펴보면 ‘전통도예기법’, ‘물레성형기법’식의 기법 위주 실습강의가 기술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강사는 대부분 아카데미 출신으로서 실무면이라든가 특정 전문기능면에서는 부족하기 쉽다. 적어도 이런 교과목들은 해당 분야 전문가(명장)의 강의로 대체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 하다.
2년제 대학의 경우에는 필요한 기술을 충분히 익히기에는 기간이 짧으므로 단기간의 별도 심화코스를 운영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일본 아리타요업대학의 경우, 연구과정과 단기연수코스를 각 각 1년씩으로 운영하고 있다. 연수코스의 목적도 ‘도자기에 관해 한 가지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적인 지식, 기술을 습득하게 하여 훌륭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능자를 육성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술적인 면에서의 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우리도 필요하면 만들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경험이 풍부한 실무자의 확보도 관건이겠거니와 전통처럼 여겨 온 각 대학의 학풍이나 교과과정의 상당 부분을 개편해야 하는 수고가 따르므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졸업 후는 본인이 알아서 하는 것’식의 자칫 무책임할 수도 있는 태도와 여태까지의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기득권의 태도부터 고쳐 나가야 할 것이다.
지역 산업에 있어 기술과 디자인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기술 집약 산업과는 달리 도예라는 분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문화의 한 형태이다. 제한된 소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성형기법, 번조라는 과정을 거치는 점에서 대부분 유사한 작업 형태와 결과를 가지지만 각 국가의 지리적 환경과 문화적 특성, 취향에 따라 각각 다른 형태의 발전을 이루어 왔다. 대체로 공방체제의 소량생산이었던 도자기는 산업혁명을 거치며 대량생산과 소비의 틀을 갖추어 왔다. 그러나 지금도 다품종 소량생산의 공방도자기제품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기도 이천을 비롯한 지역 도자클러스터에서의 소규모 공방생산은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천의 경우에는 80년대 이전의 일본 특수로 말미암아 그 규모는 비대해져 있지만, 질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고는 보기 힘들다. 물론 예전에 비해서 디자인과 생산을 위한 환경적인 조건들이 많이 개선되었으나 상당수가 영세함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낮은 기술력과 디자인품질에 이은 판매 저조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인데, 지역 내 대학이나 전문연구기관이 재교육의 역할을 담당하여 기술과 디자인의 향상을 꾀하는 것이 제일 합리적일 것이다. 언뜻 생각해도 대학은 조형훈련(디자인), 전문연구기관(요업기술원 등)은 기술지원 등으로 역할 분담이 가능하다. 이렇듯 소규모 공방들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들은 디자인과 기술력의 향상이므로 조합 등의 조직을 통해 대외적인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이들 공방의 운영자들 또한 대학에서 도예교육을 받았거나, 가업의 계승이나 생업을 위해 일찍이 이 업종에 종사해 왔던 사람들로서 그 지원기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
만약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 한다면 클러스터의 특성을 적절히 활용한 네트워크 구성, 기술과 디자인의 공유, 합리적인 협력체제 구축을 통해 함께 성장할 수 있겠지만, 외부 기관에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고 수용하게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편리한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년 후반기에 이천에 들어서게 될 요업기술원 분원은 적어도 기술적인 고충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해 줄 것으로 믿는다. 이와 함께 디자인과 제품기획에 관한 것들은 관내 대학이 담당할 수 있도록 협조 요청을 해 온 바 있다. 이와 같이 특정 지역에는 대학, 연구소 주도형의 클러스터가 효과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클러스터 지역인 아리타의 경우, 요업기술센터가 주축이 되어 제품의 기획에서 생산, 디자인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지원해 주고 있으며 관내 업체를 위한 단기 연수코스도 운영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체계를 보더라도 일본이 훨씬 앞서 있음을 부인할 수 없으므로, 적절한 모델로 활용하여 필요한 것들은 반드시 도입하도록 해야 한다.
전통도예와 기술
해마다 국가에서는 특정 분야의 기능인들을 대상으로 명장이라는 칭호를 부여함으로써 올바른 기능인의 모델을 제시하여 왔다. 그 선정 기준은 ‘장인정신이 투철하고 그 분야 최고의 기능을 가진 자로서, 산업 현장에 장기간 종사함으로써 기술발전에 크게 공헌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주목할 만한 일은 도자기공예부문 명장으로 선정된 작가의 경우 대학의 도예교육 체계를 경험한 사람은 드물며 또한 대부분 전통도예작가라는 점이다. 또한 상당수가 소위 도제徒弟식으로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에 걸쳐 가치 있는 자기 분야의 업적을 이룩한 것인데, 대학의 도예교육을 담당하는 교육자들은 이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궁금하다. 비록 한 분야의 기능에 국한되어 있더라도 그것은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음에 틀림없다. 도예라는 한 분야에서 ‘전통’과 ‘현대’ 는 융합과 상호 존중으로 필요한 것이지 헤게모니를 위한 것이 아니다. ‘기능’을 단지 전체를 위한 한 부분으로 생각하는 경시풍토부터 바꿔야 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현대도예는 뿌리가 없다. 추상표현주의에서 출발한 것도 아니고, 선禪사상의 접목과도 관련이 없다. 단지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에서 그것을 무분별하게 여과 없이 받아들였을 뿐이다. 더구나 우리나라 근대 도예교육조차도 서양의(정확하게는 미국의) 지원과 교육체계로 시작되었으며, 미술대학 입시는 오랫동안 외국의 것을 참조하여, 창작 능력보다는 암기와 숙달된 테크닉에 의한 완성도가 성패를 좌우해 왔던 것이다. 이런 장기간의 자의식自意識 부재가 우리 전통도예를 한낱 볼거리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가져 온 것인지도 모른다.
면면히 이어져 오고 발전을 거듭한 한 분야의 기능도 충분히 존중 받을 만한 가치 있는 일이다. 대학의 도예교육에서는 우리의 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좀 더 보여주기 바란다.
꼼꼼하게 기록하고 분류하며, 공유한다는 것
흔히 청자의 색을 두고 말할 때 비색翡色이라고들 한다. 한 때 우리 옛 청자의 색을 재현하는 것을 두고 많은 도예가들이 매달렸던 적이 있었다. 누가 더 원래의 청자색과 비슷한 유약을 만들어내는지 경쟁이 붙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마도 그 翡色이 秘色이 되었을 것이다. 그 유약의 조성비는 비밀이 된 것이다. 당연히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여 얻은 지식은 공유되기 힘들다. 그래서 그 지식은 개인과 기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노하우Know-How로서 가치를 지닌다. 그러나 충분히 공유해도 될 만한 것들은 있기 마련이고, 이것은 연구의 동기로서 발전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전공과 관련해서 주위를 둘러보면 관련 서적조차 변변하지 못하고, 흙과 유약에 대한 분류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우리 근대도예사近代陶藝史에 대한 정리도 최근에야 끝났다. 잘 정리된 텍스트가 주는 힘은 크다. 과거를 분석 가능하게 하는 것과 한 분야의 미래를 예측하게 하는 힘은 텍스트가 거의 제공한다 해도 무리가 아니다. 재료 기법 역사 등 우리의 시각과 환경에서 끌어 낼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가 꼼꼼하게 기록해야 하며, 또 누군가는 잘 분류해야 하고 미디어를 통해 공유돼야 한다. 더불어 이러한 지식정보는 쉬운 형태로 가공되어 누구나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 ‘도자기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미래는 더 밝은 것이다.
대학은 이러한 면에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관·산·학의 협력도 힘을 발휘하지만 근본적으로 연구와 지식공유를 위한 인프라는 이미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학이라는 교육기관이 가진 공공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식의 보고寶庫로서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길이기도 하다.
필자약력
도예가
2001세계도자기엑스포 행사부 프로듀서
청강문화산업대학 리빙세라믹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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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erazin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