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박수아 _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센터 연구원
존 닐리(John Neely)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전시장이 아니라 책에서였다. 현재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도예가들의 티팟 작품 500점을 소개한 <500 Teapot>1)에서 그의 작품은 독특한 아이디어와 화려한 색감으로 무장한 여타의 것들과는 대조적으로, 안정적인 색감과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한 간결한 형태로 티팟의 본래적 기능에 충실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2003년 9월, 세계도자기엑스포에서 주최한 이천국제도자워크숍, 그리고 홍익대에서의 특강은 그의 작업세계를 보다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현재 미국의 유타주립대학Utah State University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존 닐리는 교내에 장작가마를 설치하는 등, 다분히 동양적 방식의 작업스타일을 고집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에서의 체류경험에 기인한 것으로서 19세 때 도일하여 12년가량 거주하며 접했던 제작방법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실험, 시도들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처음부터 일본도자기에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우연한 기회에 유학의 대상국을 일본으로 바꾸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의 생활양식으로부터 중요한 작품의 주제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1. 일상다반사 日常茶飯事
“티팟을 만드는 나의 제1의 영감은 일본에서의 경험에 있다. 나는 그곳에서 많은 티팟을 사용했고, 많은 티팟을 만들었으며, 더 많은 티팟을 봤다.”
그가 작품의 주제를 티팟으로 택한 데에는 일본에서 얻은 경험들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일본생활이 작품에 끼친 영향에 대해 그는 하나의 단어로 설명한다. ‘니치죠사한지日常茶飯事’. 우리말로 ‘일상다반사’로서 늘 있는 일, 예사로운 일을 가리킨다. 흔히 있는 일이라는 말을 차를 마시고 밥을 먹는다는 단어를 사용해 나타낼 정도로, 한국인과 일본인에게 차문화는 일상생활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차를 마시는 일본에서의 생활을 통해 자연스럽게 티팟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부엌에서, 그리고 테이블에서 자주 마주치는 경험이 어떤 작품을 만들고 싶게 하는 자극이 되었고, 그의 이러한 관심과 흥미는 일상에서의 자연스런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티팟작품들로 탄생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매우 간결한 형태미와 단아한 색감을 표방하고 있으며 누가 보아도 동양적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또한 버나드 리치Bernard Leach의 영향을 받은 밍게이소타Mingeisota의 작가인 워렌 맥킨지Warren Mackenzie의 작품이 그러하듯 오랜 전통적 경험들이 고스란히 적용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2. Utility
“내가 만드는 티팟의 대부분이 식탁이나 부엌에서 사용되기를 의도하지만, 쓸모라는 것에 대해 독단적이지만은 않다. 나는 쓸모라는 것을 한 편에는 무엇을 담는다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아이디어, 그리고 다른 편에는 구체적이고 초점이 분명한 하나의 목적을 가진 도구라는 아이디어의 연속체라고 생각한다. 차를 끓이고 담는 ‘기구machine’인 티팟은 구체적인 쪽의 끝에서 발견된다…”
작품의 주제가 티팟이라면, 그 주제를 형상화하는데 있어 그가 생각하는 첫째의 원칙은 얼마만큼 기능적인가, 즉 자신이 본래 가진 목적을 얼마만큼 충실히 이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현대의 많은 작가들이 티팟을 그들의 조형어법을 담아내는 오브제로서 취급하고 있다. 다른 기물들과는 달리 티팟은 그것의 구성요소를 필요로 하고, 그러한 요소들-물대 뚜껑 몸체 손잡이 굽-을 다양한 상징적 기호로 이용한 조형적인 작품은 흔히 볼 수 있다. 때때로 이 요소들은 과장되기도 하고 무시되기도 하며, 작가의 조형세계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기능한다.
존 닐리의 티팟은 이들의 티팟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독특하고 창의적인 형태와 색감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려하기 보다는, 차를 끓이고 담아내는 티팟의 근본적인 기능을 주시하는 그의 관점이 나타나 있다.
3. Exploration
“… 나의 접근은 연금술사의 접근과 과학자의 접근 사이의 어떤 점에 위치한다 : 표현이라기보다는 발견이 나의 주된 모티베이션이다.”
그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을 위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일본,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을 방문하며 그 곳의 전통을 익히기도 하지만,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기까지는 새로운 시도와 실험의 과정을 빼놓지 않는다.
재료와 프로세스에 대한 탐구. 어떤 의미에서 티팟은 그의 탐구를 위한 매체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는 독특한 색과 표면 질감을 얻어내기 위해, 번조과정에서 다양한 변화를 주고 결과를 관찰하여 다시 실험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재료와 프로세스의 정해진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러한 노력들은 그의 작품에 그만의 아이덴티티를 부여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재료와 제작과정에 대한 탐구의 열정은 일반적인 작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가마에까지 뻗어 있다. 그가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트레인 킬른train kiln이라는 이름의 가마는 기차와 같이 옆으로 긴 구조의 것으로서, 한 쪽 끝의 윗부분에서 불을 때면 옆으로 긴 공간 안에 재임된 작품의 아랫부분을 지나 다른 쪽 끝으로 불이 빠져 나가는 원리이다.
이 가마는 기존의 도염식, 직염식 가마보다 효율성이 좋아 세계의 여러 곳에서 제작 사용될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이러한 사실은 존 닐리의 끊임없는 탐구의 한 단면을 시사하고 있다.
동양적 정서를 듬뿍 담은 존 닐리의 작품은 그 자체로 동서양 교류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이국 문화에의 호기심과 학습, 끊임없는 관찰과 연구의 자세이며 이러한 것들이 녹아들어간 그의 작품은 작가 스스로 느끼는 것보다 더 많은 의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필자약력
1977년 서울 출생
199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입학
2001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졸업
2002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 예술기획 전공 재학중
현,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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