蔡廷勳 / 보광창업투자(주) 심사3팀 팀장
필자는 재료공학을 전공하고, 짧지만 엔지니어로서의 경력을 거쳐 2000년 창업투자회사에 발을 들여 놓았다. 당시는 1998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벤처붐이 지속되던 시기로서, 수많은 기업가들이 코스닥 등록을 통해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었고,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도 투자 기업의 주식 매각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엔지니어, 연구원 등 비금융권 출신이 벤처캐피탈이라는 특수한 분야에 대거 진입한 것도 이 시기였다.
벤처투자의 놀라운 성공으로 보다 많은 자본이 벤처캐피탈로 유입되었으며, 창업투자회사 설립 붐으로 이어졌다.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는 과열되기 시작했고, 비즈니스모델에 대한 철저한 검증 작업을 거치기도 전에 투자결정은 신속히 이루어졌다. 사실 좀 괜찮은 기업으로 알려지면, 다수의 벤처캐피탈이 투자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따라서 벤처기업은 어렵지 않게 창업투자회사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으며, 벤처캐피탈의 자금은 ‘Easy Money’로 인식되었다.
이후, 인터넷 버블 붕괴와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회의감으로 창업투자회사의 양대 기반이 되는 벤처산업과 코스닥 시장은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창업회사의 수는 감소하고, 신규투자는 보다 신중해졌으며, 많은 인력들이 창업투자회사를 떠나갔다. 자금 조달에 실패한 회사는 자생력을 갖추지 못하고 소멸되었으며, 적자를 내는 코스닥 등록 법인들이 많아졌다. 이런 경험은 벤처캐피탈리스트로 하여금 투자에 보다 신중히 접근하게 만들었고, 투자검토시 ‘수익성과 비즈니스모델’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본고는 벤처캐피탈의 입장에서 투자결정시 대상기업의 어떠한 측면을 중요하게 인식하며, 투자가 어떤 절차와 기준을 통해 이루어지는 지를 기술하고자 한다. 이에 대한 이해가 벤처기업의 자금조달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벤처캐피탈에 대한 이해
벤처캐피탈은 통상 기술력은 있으나 담보력이 취약한 벤처기업에 무담보 주식투자의 형태로 자금을 지원한 후, 투자기업이 성장, 발전하면 보유주식을 매각하여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주업무로 하고 있다. 이러한 투자형태는 일반 금융기관과 어떻게 다른가? 기업에 자금을 조달한다는 측면만을 고려할 때 벤처캐피탈은 은행 등 일반 금융기관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으나, 자금지원 내용면에서는 기존의 금융기관과 확연히 구분된다. 즉, 일반 금융기관의 자금지원 형태가 충분한 담보를 확보한 후 융자의 형태로 자금지원을 해주고 일정금리를 취하는 것이라면, 벤처캐피탈이란 기술력은 있으나 담보력이 취약한 벤처기업에 무담보 주식형태로 자금을 지원한 후 투자기업이 성장, 발전하면 보유주식을 매각하여 투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주업무로 하고 있다. 따라서, 벤처캐피탈은 벤처기업의 경영성과에 따라 크게는 수배 또는 수십배의 수익을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투자금을 전혀 회수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게 된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벤처캐피탈의 투자심사와 일반금융기관의 대출심사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갖는다. 즉, 전자의 경우 기업의 개발능력, 시장성, 성장성 등 정성적인 측면을 주로 검토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담보여력이나 금융거래 실적 등 계량화가 가능한 면을 검토하여 자금지원 여부를 결정한다. 따라서 금융기관의 경우 기관마다 거의 동일한 심사결과를 보이나, 벤처캐피탈은 각 경우에는 어떤 기관을 접촉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심사결과를 얻을수 있는 것이다. 표에 벤처캐피탈과 일반 금융기관의 차이점을 정리해 보았다.
사업가는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를 기업 설립 초기부터 고려해야 한다.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설립 초기에는 일반 금융기관을 통한 차입이, 중기 이후에는 벤처캐피탈을 통한 투자 유치가 바람직해 보인다. 과도한 차입의 경우 이자와 상환 부담이 커지고, 지나친 투자 유치는 대표이사 지분의 희석으로 이어져 경영권 행사에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기업의 기술력이나 성장성을 투자심사시 중요하게 본다는 점은 벤처투자만의 특징이며, 이로 인해 벤처투자는 매우 주관적인 작업이 된다. 실제로 대부분의 벤처캐피탈의 경우 벤처기업의 발굴에서 투자, 회수까지의 과정을 벤처캐피탈리스트들의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투자심사의 결과 역시 벤처캐피탈회사나 벤처캐피탈리스트들에 따라 다양한 특정성이 존재하게 된다.
2. 벤처캐피탈의 투자 프로세스
벤처캐피탈이 최종 투자 결정을 내릴 때 어떤 절차를 따라 이루어지는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벤처투자는 각 투자심사역(벤처캐피탈리스트)의 개인적인 지식과 경험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고, 각 벤처캐피탈의 투자행태에 따라서도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벤처투자의 프로세스를 어느 정도 단순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투자 과정은 1)벤처기업의 발굴, 2)사전 검토, 3)정밀심사 및 실사, 4)투자협상 및 계약 체결의 4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각 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가. 투자대상의 발굴
가장 규정하기 어려운 단계이다. 벤처캐피탈은 모든 가능한 수단과 경로를 통해 투자기회를 발굴하는데, 우수한 벤처기업을 발굴하는 것은 전적으로 투자담당자의 능력에 의존한다. 주로 1)창업투자회사로 기업가가 직접 전화를 하거나, 신문 등 대중 매체를 통해 투자담당자가 기업을 발굴하는 경우, 2)이미 투자한 벤처기업을 통해서 소개를 받는 경우, 3)투자담당자의 개인 네트워크로 발굴하는 경우, 4)다른 벤처캐피탈로부터 공동투자를 제의 받게 되는 경우 등이 대표적이다.
이 단계에서 벤처캐피탈은 기업가가 제출한 사업계획서를 검토하며, 대표이사와의 미팅을 통한 간단한 투자 상담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투자대상의 발굴 능력은 벤처캐피탈리스트가 보유한 네트워크의 폭과 깊이에 의해 좌우되는 매우 중요한 항목이다.
나. 사전 검토
접수된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심사(Screening) 작업을 거치는 단계로서, 다음을 주로 검토한다.
1)투자규모 : 국내 벤처캐피탈은 통상 5억~10억원 사이의 자금을 투자하는데, 이보다 큰 경우는 여러기관이 공동으로 투자하기도 한다. 투자규모가 너무 작거나 큰 경우 심사대상에서 제외될 수있다.
2)기술 및 시장 : 벤처캐피탈은 주로 신기술 관련 분야를 선호하며, 각자 선호하는 분야가 있다. 전통산업이나 담당심사역이 선호하지 않는 분야는 심사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3)기업의 성장단계 : 각 벤처캐피탈마다 선호하는 단계가 있다. 사업초기의 기업을 선호하는 기관이 있는가 하면, 성숙단계의 기업을 선호하는 기관도 있다.
다. 정밀심사 및 실사
벤처캐피탈의 투자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로서 각 벤처캐피탈은 나름대로 개발한 방식과 지식에 기초하여 대상기업을 엄밀하게 분석하여 투자여부를 결정한다. 주로 심사하는 부분은 1)대표이사 및 핵심인력 사항, 2)주제품 또는 서비스의 시장성, 3)개발 혹은 영업 상황의 사실 여부, 4)재무현황 및 소요자금의 적정성의 네부분으로 볼 수 있다. 심사과정은 투자심사역과의 면담, 해당산업 전문가와의 미팅, 관련 기업과의 미팅 주선, 공인회계사를 통한 회계 실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반복된 미팅과 실사 등으로 기업가를 가장 지치게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기업가는 투자심사역과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며, 객관적인 자료준비, 협력기업과의 미팅 주선 등을 통해 사업 성공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라. 투자협상/계약체결
정밀심사 및 실사를 통해 투자결정이 내려지면, 투자 계약을 맺는다. 이 단계에서 기업은 벤처캐피탈과 다음 문제들을 결정해야 한다.
1)투자 형태 : 보통주, 우선주, 전환사채 등
2)가격 : 액면가 할증 배수
3)기타 조건 : 임원선임권, 추가투자시 우선권 등
가장 중요한 부분은 대개의 경우 ‘가격’이 된다. 벤처캐피탈리스트는 적정한 방식으로 기업 가치평가를 하며, 기대수익을 충족할 수 있는 조건이면 투자를 결정할 것이다. 가격 및 투자형태가 결정되면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계약서 내용에 대해 가급적 법률적 검토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3. 투자프로세스의 예
투자담당자 입장에서 볼 때 벤처투자는 계량화하기 힘들고 쉽게 결론을 내리기 힘든 과정이다. 사실 필자의 경우에도 투자검토의 마지막 단계까지 투자 여부를 놓고 갈등하고 고민했던 적이 많다. 기업가의 입장에서 볼때, 투자유치가 어느 단계까지 진행되고 있는지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각 회사별로 차이가 있겠지만, 아래에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투자 프로세스를 나타내었다.
당사는 최초 사업계획서를 접수하여 예비검토를 통과한 업체에 대하여 사업설명회를 실시하고 있다. 사업설명회는 투자검토가 본격적으로 시작됨을 의미하며, 이 시점으로부터 최종 투자 결정까지 보통 45일 정도 소요된다. 많은 시간이 검토기업의 사업성 검토에 소요된다. 투자담당자의 검토 결과가 긍정적일 경우, 심사역 전원이 참석하는 투자심의위원회를 개최하여 투자여부를 만장일치로 결정하게 된다. 현재 대다수의 벤처캐피탈에서 투자심의위원회를 통한 투자결정이 보편화되어 있는데, 만장일치제는 투자담당자의 개인 의견을 존중하는 동시에 잘못된 판단으로 인한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이다. 투자심의위원회를 통과한 기업은 투자의 8부 능선을 넘었다고 볼 수 있다. 투자가 결정되면, 대상회사에 대하여 재무실사를 실시하고(초기회사는 제외), 가격이나 투자방식 등 기본적인 투자조건에 대한 협의를 거쳐 계약체결 및 자금집행을 하고 있다.
4. 결 론
벤처캐피탈의 투자프로세스는 기관별로 큰 차이를 보이는데, 이는 각 벤처캐피탈리스트에 따라 선호하는 분야나 기업형태가 다르고, 투자 결정시 계량화하기 힘든 측면을 주로 검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가는 투자상담 파트너인 각 벤처캐피탈의 성향을 미리 파악함으로써 시간과 노력을 줄일 수 있다.
벤처캐피탈의 투자프로세스는 통상 45일 정도 소요되며, 투자 결정은 기업가에 대한 신뢰와 기업의 사업 성공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벤처캐피탈을 통한 자금 유치는 기업가 자신의 사업 능력과 사업의 핵심을 이해시키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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