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홍원 한국도자재단 종합기획실 테마파크팀장
지난 호의 한국도자재단 1차 중국 문화교류 대표단 방문기에 이어서 이번 호에서는 2차 방문단 답사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필자는 지난 12월 27일 오후 1차 방문단을 보내고 28일 2차 방문단을 북경 공항에서 맞았다. 2차방문단은 외부 초빙 인사(우관호 홍익대학교 유리도예학과 교수), 비엔날레팀장 강정원, 여주 테마파크 TF팀의 박성천, 이수진, 뉴딜팀의 김광래, 공공사업팀의 황형석, 기획총무팀의 김현희 그리고 인솔자로 테마파크팀장 이홍원 등 총 8명으로 구성됐다.
1차 방문단이 중국문화교류의 교두보와 거점확보에 목적을 두었다면 2차 방문단은 향후 토야지움과 테마파크 조성, 뉴딜사업 진행을 위한 벤치마킹과 워크샵을 위한 방문이었다. 따라서 출장 형태가 1차와는 사뭇 다른 일정들로 이뤄졌다.
공항에서 처음 향한 곳은 극장식 식당이었다. 식사 중에도 일을 생각하게 하는 집요함! 추후 재단내 테마파크 안에 관람자들을 위한 레스토랑이나 카페들을 만들게 되면 어떤 식으로 가져가야 할지, 공연의 형식과 시설은 어느 정도의 수준으로 구성해야 하는지, 그 안에서 우리 도자기를 어떻게 어필하고 어떤 영역을 접목하거나 활용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했다. 예전에 보았던 중국의 관광지는 단순한 관광과 휴식을 위한 목적이었지만, 이번 방문에서는 새로운 과목의 참고서 첫 장을 넘기는 것처럼 새로운 느낌이었다.
첫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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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식 식당에서의 점심식사 그리고 천단공원
우리나라에도 극장식 레스토랑은 많다. 그렇다고 그리 고급스럽지도 않은 이곳에서 식사를 하는 이유는 식당은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스킨쉽을 나누는 곳 그리고 만남과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는 곳이 바로‘식당食堂’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세심한 배려가 필요한 곳이고 문화 컨텐츠를 어떻게 선택하느냐는 것은 식당의 그레이드를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테마파크의 전체 수준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요소일 수가 있다. 우리가 찾은 식당은 평범해 보이는 내부 인테리어였지만 ‘공연’을 보여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식당의 ‘색’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색을 만들어야 할까? 아~ 우선 밥부터 먹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충웬구에 있는‘천단공원’으로 향했다. 역시 그 엄청난 규모는 압권이었다. 그리고 그네들의 상술은 가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게 했다. 매표를 세 번에 나눠서 끊게 만든 것이다. 어차피 세 군데서 매표를 할 수밖에 없지만 한 번에 매표하면 가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기에... 귀엽기도 하고 얄밉기도 했다.
엄청난 규모의 돌판 조각은 곳곳에서 볼 수 있었고 그 정교함 또한 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한참이나 붙잡아 두었다. 나무들의 나이를 이름표의 색으로 표시하는 센스와 디테일은 눈여겨 볼만 했다. 도자로 만든 봉화대는 그들이 얼마나 도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었는지를 가늠케 했다. 나이 들어서 중국을 여행하는 일은 참 힘들 것 같다. 정말 다리가 아프다...
하나라도 더 봐야겠다는 욕심으로 ‘공연’을 관람하러 ‘브릿징사’의 직원들을 따라 나섰다. 우리가 도착한 공연장에서는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관람객이 꽤 많았다. 공연장의 곳곳에는 도자벽화가 장식돼 있었다. 공연은 가히 신기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 보다도 조명과 무대미술, 레이져 기술과 무대장치 기술 그리고 스케일에서 그들의 저력을 톡톡히 보여주고 있었다. 단순히 ‘서커스 수준이겠지...’라는 생각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그 쯤 되면 종합예술이라 할만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중국이 이정도 인데, 우리는 어떤 공연 컨텐츠로 승부를 걸어야 하나?’알다시피 앞으로는 공연문화가 집객의 중요한 컨텐츠이다. 그곳에 무엇이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떤 볼거리가 있는지는 더 중요하다. 따라서 테마파크 내의 공연 프로그램은 집객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 또 하나의 숙제를 갖고 호텔로 향했다.
둘째 날, 만리장성 - 정릉 - 이화원
아침 일찍 우리는 ‘만리장성’으로 길을 잡았다. 만리장성 주변엔 유명한 동물원과 박물관이 있었다. 만리장성 주변의 서브앵커 시설인 셈이다. 요즘 사람들은 한 곳에 가서 여러 가지를 체험하고 즐기려한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이며, 하나로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합적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은 문화시설이건 교육시설이건, 아니면 상업시설이건 요즘의 기본 트랜드이다. 이것은 여행의 코스와 동선을 만들어 주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계획할 때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시설 배치와 동선 구성이다. 그리고 만리장성을 오르면서 이들의 ‘스토리텔링’ 능력에 또 한 번 감탄했다. ‘모택동’은‘만리장성을 오르지 않은
남자는 진정한 남자가 아니다未上長城非好漢波’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산을 올랐을까? 요즘의 추세가 바로 ‘스토리텔링’의 시대다. 그 속에 얽힌 스토리와 역사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외형만 갖고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도자재단’의 지형도 경사가 가파르다. 그 때문에 ‘이천세계도자센터’로의 집객율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이제 더 이상 핑계에 불과할 뿐, 지형조건 보다는 바로 스토리텔링과 집객 요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 추운 겨울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만리장성’을 오르는 것은 단순히 유명 관광지 때문일까?
우리는 점심식사를 위해 한 관광 음식점으로 향했다. 그 음식점 안에는 칠보 공예 공방과 상품점이 함께 있었다.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들은 벌써 식당 하나에서도 복합 구성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누가 중국을 못살고 미개한 나라라고 했는가? 겉으로만 번지르르 하다고 선진국은 아닌 듯 싶다. 문화적 마인드는 어떻게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간단히 점심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다음 행선지로 자리를 옮겼다.
‘명 13릉 중 정릉(신종제)’를 방문했다. 신종제가 지하에 궁전을 만들고 수많은 궁녀와 지냈던 곳이다. 13개의 릉陵 중에서 이곳을 처음으로 발굴했고 1백년에 한 곳씩 발굴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하는데 실제 후대를 위해 관광 컨텐츠를 물려주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 만큼 조심스럽게 문화재를 발굴하겠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기술력이 부족한
것인지 그 속내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어쨌든 그렇게 순차적으로 100년에 릉을 하나씩 복원한다는 이야기 자체가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으로 여겨질 뿐. 이곳은 우리 재단이 자리한 곳의 행사장에 돌이 많아서 개발하기 어려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돌파구를 보여 주는 예이기도 하다. 조성 시간은 오래 걸리겠지만 일단 조성에 성공만 한다면 자연 친화적 형태의 컨텐츠를 만들어내고 그것이 또 하나의 집객요소로 작용하면서 지형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도 있다.
정릉을 빠져나와 서태후의 여름별장‘이화원’으로 향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복도식 회랑의 보와 기둥에 그려진 그림들이다. 잔인하기로 유명한 서태후, 그의 아들 동치 황제가 서태후를 위해 전국의 3,000명의 화공들을 불러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회화 뉴딜사업’? 어쨌든 대단한 노릇이다. 스토리텔링은 이 곳에서도 계속 이어졌는데, ‘인수전 앞의 집채만한 바위를 서태후를 위해 옮겨온 후 옮긴 사람의 집안이
몰락했다’하여 ‘사진을 찍으면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전설이 그 중 하나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지 않았다. 겨울의 낙조가 더없이 아름다웠다. 은빛 얼음호수와 즐거운 표정의 사람들을 보면서 이천 설봉공원의 호수를 떠올려 보았다.
셋째 날, 천안문 광장 - 도시기획관 - 유리창
여전히 차갑고 건조한 바람을 맞으며 사람의 피가 발목까지 찼다던 ‘천안문 광장’으로 향했다. 왼편으로 자금성과 그 뒤쪽으로 경산공원이 위치해 있었다. ‘자금성’으로 더 잘 알려진 ‘고궁’은 영락제 1417년 명 태조가 남경에서 천도하면서 원의 궁성자리에 세웠다. 중국 최고의 목조건물‘태화전太和殿’이 명물이다. 자금성 뒤쪽으로‘경산공원’이 버티고 있는데, 북해공원과 고궁을 건립하면서 나온 토사를 쌓아 동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쪽의 땅을 파면 한 쪽엔 산이 생긴다’는 단순한 논리는 ‘테마파크 조성’방법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아울러서 발상의 전환을 갖게 한다. 경산공원의 꼭대기에는 북경 동서남북의 가장 가운데 위치
를 가리키는 자리가 있다. 마치 우리나라의 광화문의 이순신 장군 앞의 중점처럼 북경의 모든 방위와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북경 도시기획관’으로 향했다. 북경을 한 건물 안에 모두 축소해서 보여 주는 곳이다. 바닥에 사진과 영상을 통해 북경의 시가지를 설명하고, 3D 영상관과 온갖 시청각 기술로 북경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래층에 도시 전체를 꾸며 놓고 위층에서 내려다보도록 구성하면서 어린이 안전을 위해 안전시설을 갖춰 놓은 세심한 배려는 우리가 배울만 했다. 천안문 광장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무섭도록 빠르게 변두리로 개발돼가는 북경은 쉽게 가늠하기 어려웠다. 과연 10년 후의 북경은 어떤 모습일가? 상해 도시 전체가 세계건축 박물관으로 불리듯이 북경도 그렇게 변해갈까? 몇 해 전만 하더라도 사회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던 이곳이 너무도 빠르게 변해 간다. 참, 무서운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이들은 북경을 설명하고 교육하기 위해 이렇게 애를 쓰는데 우리는 도자기를 설명하고 교육하기 위해서 어떻게...! 아마도 끊임없이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들 보다 뒤처지는 것은 자명한 일일게다.
우리나라에 ‘인사동’과 ‘황학동’이 있다면 이들에겐 ‘
유리창琉璃廳’이 있다. 테마파크 내에 ‘상업시설’을 조성하는데 도움이 될까 한 번 들러봤다. 큼직한 자사호 조형물과 기념품 상점들..., 우리와 다른 점은 이들은 공예품 제작 과정을 공개한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만드는 곳 따로, 파는 곳 따로가 아니라 옆에서 그 물건을 만든다. 당연히 진열만 돼있는 것보다는 옆에서 만드는 모습을 보고 물건을 살 수 있는 확률은 훨씬 높다.
본인도 이곳에서 차도구를 한 세트 샀는데 가격대비 품질이 괜찮은 편이다.
어느덧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갔다.
마지막 날 1차 방문단이 다녀갔던 ‘민룡도자관’과 ‘798거리’를 답사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다른 일행들은 3박 4일 일정이었지만 필자 혼자 7박 8일의 일정을 소화해야하는 탓에 홀로 밤 비행기를 타야했다. 2010년 1월 1일의 새벽하늘은 고요했지만 ‘한국도자재단’의 한 해를 예상해 보면 아마도 100미터 달리기 직전의 ‘적막함’으로 느껴졌다. 변화의 물결 흐름에 앞장 선 우리 재단의 공공개혁과 새로운 사업들은 분명 도예인들을 위해 그리고 재단 스스로를 위해 우리 반성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때문에 스스로 ‘내 살 한 점’을 내주고 시작해야함은 자명한 일인데,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과업들은 재단만이 안고 가는 문제도, 작가들이 풀어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닌, 함께 하나씩 풀어가야 할 과제이고 어느 시점에서는 스스로 자랑스러워 할 일이기에 ‘희망’이라는 끈을 허리에 잡아매고 크게 숨을 한 번 내쉬어 본다.
2차 중국교류 방문단 북경 공항 도착
극장식 관광식당에서의 첫 점심식사
천단공원 앞에서
보도블럭에 글쓰는 아저씨
공연장면. 왼편에는 도판이 장식돼 있다
도판(세부사진)
유난히 추운 날씨에 오른 만리장성
식당안에서 운영중인 칠보공방의 작업 모습
명 13릉 중 ‘정릉’의 입구
정릉 지하 내부의 유물 전시
동치 황제가 서태후를 위해 3,000명의 화공들을 불러 그림을 그리게 했다는 ‘이화원’의 복도식 회랑
이화원의 낙조가 드리운 호숫가
경산공원에서 내려다 본 자금성과 북경 시내
자금성에서 올려다 본 경산공원
북경 도시기획관
도시기획관. 도시전경 미니어쳐와 바닥 영상
공예 상점 모습
유리창 거리 입구 조형물
필자 이홍원은 중앙대학교 박물관·미술관 학과 전시기획을 전공하고 갤러리사비나 큐레이터와 예술의전당 기획위원을 역임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재)세계도자기엑스포 전시기획실 근무하고 2005년 (주)SHU커뮤니케이션즈 기획실장으로 ‘신비한 미생물전’, 2006년 자인아트하우스 전시기획 실장으로 북경 ‘문’갤러리의 ‘순진한 상상 전’등을 기획했다. 2007년에는 (주)인팩지씨에프 부장직을 맡아 국내 문화도시 및 테마파크 마스터플랜 수립했으며 2008년 도자진흥재단에 복귀 전시기획실 전시1팀장을 맡고 현재 재단 종합기획실 테마파크팀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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