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홍원 한국도자재단 종합기획실 테마파크팀장
한국도자재단(전 도자진흥재단)은 지난 2009년 12월 24일부터 31일까지 1, 2차에 나눠 초빙 전문가들과 함께 중국을 다녀왔다. 이번 중국 방문의 목적은 중국과의 향후 공식적인 교류창구 개설 및 거점을 확보하고, 중국의 도자분야 지원 사례 조사, 그리고 향후 재단에서 추진하는 ‘세라피아’ 조성사업을 위한 테마파크 유사사례를 조사하는데 있었다. 방문 예정지는 ‘북경’과 ‘천진’이었고 1차 방문단과 2차 방문단으로 나누어 3박 4일씩 교대로 다녀왔다. 방문 인원은 총 20명이었으며, 1차 방문단은 강우현 이사장을 포함한 재단 직원 11명, 초빙인사 2명(한영순 한국도예고등학교 교장, 전흥근 도시문화공간디자인연구소장)으로 총 13명으로 구성됐고, 2차 방문단은 재단직원 8명, 초빙인사 1명(우관호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교수)으로 총 9명으로 꾸려졌다.
첫째날 12월 24일
중국민간문예가협회CFLAS - 베이징 국제문화창의산업박람회ICCIE - 중국도자공업협회CCIA 방문
종교에 관계없이 ‘성탄절’ 전야의 들뜬 하루를 여는 12월 24일 새벽 5시, 전날 23일 ‘세라믹유토피아 출범식’ 행사를 치르느라 쌓인 피로도 털어내지도 못하고 안개 낀 중부고속도로에서 올림픽도로, 공항고속도를 달려 아침 7시 30분 ‘인천 공항’으로 집결, 9시 30분 성냥갑만해진 인천 신도시의 풍경을 아래로 보면서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정신없이 오느라 짐은 제대로 챙겼는지 그제서야 걱정이 됐다. 다른 사람들은 3박 4일이지만, 본인은 2차 방문단을 인솔해야 하기 때문에 7박 8일을 지내야 했고, 새해 1월 1일 새벽 1시나 되어야 다시 올 수 있다는 생각에 한편 착잡하기도 했다. 꿀 맛 같은 성탄절 연휴의 설레임은 접어두고....

방문단은 가장 먼저 ‘민간문예가협회CFLAS’로 향했다. 참고로 ‘민간문예가협회’는 중국문련중국문화예술계연합회의 산하기관으로 중국민간예술영역의 국가 주관기관이다. 중국민협의 본부는 북경에 있으며 주석은 문화부 및 문련 고위간부가 역임한다. 이곳은 중국 내 민간 예술문화의 보존, 지원, 계승, 발굴, 국제교류 등 모든 영역에서의 국가 관리기능을 이행하며, 산하기관으로는 34개 기관단체 및 8천여명의 소속회원, 30여개의 민간예술협회, 50여개의 민간예술단지, 20여개의 박물관이 소속되어 있다. 협회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빨간색 천에 흰색 글자의 ‘중·한 협약식’ 현수막이었다. 재단 이사장은 ‘한국도자재단’을 한국을 대표하는 도자문화재단으로 인정할 것, 도자와 관련된 모든 문화교류는 재단을 통해서 이뤄질 수 있도록 할 것, 중국과 한국의 문화발전을 위해서 서로 협조하고 노력할 것을 골자로 하는 ‘MOU’ 내용을 제안했고 서로 동의하에 협약을 체결했다. 협상탁자 위의 중국 깃발과 한국 깃발이 나란히 서 있는 것을 보면서 ‘아, 우리가 정말 한국의 도자문화 교류 대표단으로 온 것이구나!’라는 비장한 마음에 자세를 바로 세웠다. 협약식이 끝나고 함께 기념촬영과 선물 교환을 했다. 우리가 준비한 선물은 중국의 선물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재단의 직원들이 직접 만든 접시에 우리재단의 지난 역사를 담고 있으며 재단의 개혁을 상징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 곳을 빠져나와 바로 우리는 ‘베이징 국제문화창의산업박람회ICCIE 조직위’를 방문했다.
‘ICCIE’는 중국과 외국의 문화교류를 촉진하고, 중국 예술 시장의 번영과 문화 산업의 국제화를 위해 국가문화부, 국가 라디오 영화 텔레비전 총국, 국가신문출판총서, 북경시인민정부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적 행사이다. 올해로 네 번째를 맞은 베이징 국제문화 창의산업 박람회가 지난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닷새 동안 베이징의 국제 전시센터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행사를 펼쳤다. 2006년 처음 시작된 박람회는 그 동안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올해는 중국 내 30개 성급省級행정단위가 대표단을 보냈고, 국제지적재산권연맹IIPA, 유네스코UNESCO, 세계애니
메이션협회ASIFA 등 10개 국제 조직
과 30여 국가의 대표단이 참가하는 등 성황을 이뤘으며, 2009년도 창의산업박람회 43만명 관람객, 국내외 계약 55.2억$ 성과도 달성했다고 한다.
‘ICCIE’ 와의 면담 내용의 협의 골자는 2010년 중국방문의 해에 중국이 한국을 초청하고, 2011년 한국방문의 해에는 한국이 중국을 초청하기로 상호협의 했다. 따라서 ‘ICCIE’가 2010년 11월 창의산업박람회에 한국도자재단을 초청하고(전시면적 600㎡ 무료 제공), 2011년 제6회 비엔날레에 우리 재단이 ‘ICCIE’를 초대하기로 한 것이다. 또한 중국과 한국의 대표적인 도자 및 공예와의 교류 전시를 지속 추진하기로 했다. 사전 타진없이 그 자리에서 이런 협의를 이끌어내는 데는 서로의 신뢰가 바탕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신뢰의 이면에는 그간 쌓아온 우리 재단의 꾸준한 노력도 있었지만, 얼마 전 강우현 이사장이 ‘인민대회당’에서 중앙당 간부들을 모아 놓고 ‘개혁과 창의’에 관한 연설을 통해 많은 찬사를 받았던 전력이 큰 도움이 됐다. 많은 당간부들이 그 연설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중국의 특성상 각 기관과의 협약체결보다는 그 단체들을 조정하는 중앙당 관련 기관을 공략하는 것이 이번 방문 협약의 전략이었다. 
저녁식사도 거르고 우리는 중국도자공업협회CCIA를 방문 했다. 1989년 설립된 ‘CCIA’는 중국도자산업의 유일한 동 종업조직으로, 중국정부 특허 설립법인이다. 전국 성격인 비영리공익성 법인으로, 회원은 중국 전 지역 도자산업 관련 생산, 디자인, 연구기관, 교육기관, 무역기관, 소장애호가, 기업체 대학교, 지방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되며, 중국 국무원 국유자산 감독관리위원회 소속이다. 회원은 1천여개 소속단체 및 약 100만 명의 소속직원을 갖고 있다.
‘허태웅’ 협회장과 ‘푸웨이창’ 이사장을 비롯한 간부들과 자리를 함께 했으며, 주요 면담 골자는 ‘재단 도자공원조성에 중국작가가 참여하고 협회와의 교류를 통해 중국의 전국 네트워크와 재단의 연결 교류, 한국전체의 도자문화를 아우르고 가까운 중국 및 일본 아시아 3국을 중심으로 테마파크 및 비엔날레를 이끄는 우호관계 지속 및 지속적 협력 등이다. 아울러 재단과 중국도자공엽협회의 MOU 체결식을 진행하고 기념품 교환 및 기념촬영을 한 후 인사를 나눴다.
저녁식사 후에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 취침 준비를 완료하니 새벽 2시, 전날 거의 밤을 새우고, 첫날부터 강행군이었는데 다음날은 오전 7시 기상이란다. 극기 훈련을 온 것도 아니고 하지만 왠지 밀려오는 뿌듯함으로 피곤함을 달래면서 깊이 잠들었다.
둘째날 12월 25일
자방자瓷房子 - 천진天津대학교 - 위칭청 중국민간공예대사 작업실 방문
한국은 즐거운 성탄절. 공산국가인 중국에도 성탄절이 있을까? 호텔에, 시내 백화점 거리에, 음식점에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장식돼 있었다. 우리 대표단은 아침 일찍 아침을 챙겨 먹고 천진으로 향했다. 버스로 약 세 시간 정도 소요됐다.
‘
천진天津’에 도착하니 ‘자방자瓷房子’ 관계자가 미리 마중을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자방자’가 운영하는 음식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음식점 건물 안 밖이 박물관 형태로 꾸며져 있었고 문과 기둥 등에 도자파편들이 화려하게 건물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곳은 1932년 이탈리아의 디자이너가 설계 했으며, 1992년에 식당박물관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고 다른 이름으로는 ‘월유선’식당, ‘화운박물관華雲博物館’이라 하여 국보급 유물들도 진열이 돼있었다. 곳곳에서 도자기와 골동품을 만날 수 있으며, 천진에서 제일 비싼 음식점이기도 한데, 평일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각 방 마다 모두 예약이 돼있었다. 현재 ‘한국도자재단’에서 계획하고 있는 수장고형 전시관 ‘토야지움’을 조성하는 데 아주 좋은 사례가 될 만한 곳이었다.
바로 길 건너 5분거리에 ‘자방자瓷房子’가 있었다. 이곳 역시 명·청시대의 가구, 도자기가 빼곡히 안과 밖, 지붕고 천정까지 꾸미고 있었다. 장연지 사장이 7억개의 도자기와 파편을 수집하여 만든 곳이며, 총 4층으로 구성, 건물 중앙에 소원을 비는 항아리가 있어 위층에서 소원을 빌면서 지폐를 떨어뜨려 우물에 들어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재미를 주기도 한다. 4층에는 관장의 작업실이 있으며, 관장의 물품과 어머니의 물품 등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건물의 외관을 꾸미고 있는 도자기들의 안은 매질로 채워 동파를 
방지하고 있었으나, 역시 ‘도자기’라는 한계를 이기지 못하고 군데군데 깨진 것을 엿볼 수 있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가우디 공원’ 이나 니키드생팔의 ‘타로공원’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도자기로 꾸밀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려는 듯 했다.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도자테마파크의 건물들은 과연 무엇으로 차별화해야 할 것인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다른 방법들도 있겠으나 우선 ‘디자인’과 ‘소재장르’의 접목에서 첫 번째 해답을 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들의 환송을 받으며 ‘자방자’를 떠나 ‘천진天津대학교’로 향했다.
천진대학은 이공계열 공과대학으로 유명한 대학이다. 때문에 학교의 분위기가 자칫 경직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강의실 한 쪽 공간을 미술관으로 꾸며 놓았는데, 건물 전체의 분위기와 디자인이 포스트 모던 분위기를 풍겼다. 그 전시관 안에는 유명 회화작가의 작품을 비롯해 책, 인쇄활자, 수예 등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브릿징사(외교관 출신의 북경의 종합커뮤니케이션 회사)가 소개해 준 미술관장과 이야기를 나누며 설명을 들었다. 공산국가이긴 하지만 문화적 소양 교육에 대한 지대한 관심과 문화 강국으로써의 자존심을 지켜가려는 그들의 의지를 읽어낼 수 있었다.
어둑해질 무렵 우리는 ‘위칭청 중국민간공예대사’의 작업실로 향했다. 이미 해는 져서 어둡고 전기 불빛도 거의 없는 길을 따라 우릴 태운 버스는 더듬더듬 작가를 찾아가고 있었다. 천진의 변두리 쪽으로 40분 정도 갔을까? 작가가 차를 갖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공장의 창고 같은 넓은 작업실에 조수 4명이 함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작가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자랐고 제대로 된 미술교육을 받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재능만으로 흙을 만지기 시작했다. 주변이 온통 옥수수밭이라서 그 흙으로 작품들을 만들었고 나이 서른이 되서야 북경 중앙미술원 조각과에 입학해서 제대로 전문 교육을 받았다. 그의 자유로운 창작스타일과 아카데믹한 이론이 접목되면서 그의 작품은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고, 붉은 흙으로 인간의 ‘희노애락喜怒哀樂’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은 가식도 꾸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절대 가볍지도 식상하지도 않았다. 마치 ‘찰리채플린’의 몸짓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짠해지는 느낌이었다. 밤 9시가 돼서야 작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12시가 넘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도 취침은 새벽 2시.
셋째날 12월 26일
민룡도자관民龍陶瓷館 - 동방예술관 - 청화靑華대학교
아침 8시 식사 후 ‘민룡도자관民龍陶瓷館’으로 향했다. 날씨가 너무 추워 머리가 저릴 정도였다. 20만 평방미터의 건물에 전국 80%지역의 대표 도자기들을 모두 모아 놨다. 세미나실과 워크샵 공간 그리고 복도에 시연장을 갖추고 있었다. 이곳은 중국 공예가협회의 산하기관으로 작년에 오픈했다고 한다. 경덕진, 불산, 의흥 지역의 낯익은 도자기들도 보였고 건축, 조형, 생활, 회화도판 등 다양한 도자기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자체 전국단위 도자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경매를 진행하기도 한다. ‘민룡도자관’의 관장은 재단과의 도자교류 및 재단 방문을 희망했다. 관장의 안내에 따라 위층으로 올라 중국의 서예대가 곽홍은郭鴻恩을 만날 수 있었다. 강우현 이사장과의 서예 진검승부가 즉석으로 이뤄졌는데, 서로의 느낌을 글로 주고받았다. 이사장의 거꾸로 써가는 글씨를 보고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민간외교를 위해서는 장기하나는 꼭 갖고 있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다음으로 ‘동방예술관’으로 향했다. ‘동방예술관’은 공예, 미술작품 생산, 구매, 전시 및 연구개발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운영하는 곳이다. 중국미술협회, 중국공예도자품 및 디자인에 대한 전시를 개최하며 8개의 생산단지를 갖고 있다. 동방예술관의 진열한陳烈漢 관장은 한국의 도자관련 공식적인 창구가 미비하여 체계적이고 유연한 도자교류의 공식적인 교류창구 개설의 필요성을 이야기했고 앞으로 ‘한국도자재단’을 한국의 대표 창구로 해서 지속적인 교류를 펼쳐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한·중 도자관련 토론회 개최를 희망했다. 대표단과의 면담이 끝난 후, ‘후미생’ 교수와 이사장의 즉석 그림을 교환식이 있었다. 역시 강이사장의 거꾸로 그리는 그림에 관계자들 모두 탄복했다.
우리는 다음 방문지 ‘청화靑華대학교’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알다시피 ‘청화대학’은 중국에서 도자학과로 최고로 손꼽히는 대학이다. 도예과 건물은 모던한 외관으로 디자인돼 있었고, 실기실이 있는 건물의 복도와 로
비는 요즘 현대미술을 잘 반영한 신선한 느낌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깨끗하고 잘 정돈된 실습실과 기자재가 우선 눈에 들어왔고, 실기실 벽면과 계단은 심플하게 디자인되었으며,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실기실을 둘러보고, 쩡닝鄭寧교수와 함께 얘기를 나눴다.
청화대학은 1930년대 설립되었고 예술전문대, 도자예술과의 전신이며 도자디자인, 전통도자, 현대도자로 구분하여 과목을 개설하고 있다. 각 전공별 10명의 학생 선발(1인당 30m3 공간활용)하고, 전임강사 10명, 학부생 40명, 석·박사 40명, 유학생 포함 전체 `100명 내외로 구성되며, 한국의 서울대, 서울산업대, 홍익대, 강남대 등 국내 10여개 대학과 교류하고 있다고 했다. 쩡닝 교수는 전통도자의 중요성과 계승발전이 도자 발전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역시 마무리는 연구실에 마련된 서탁에서 ‘서예 교환’으로 마무리 했다. 저녁식사는 ‘브릿징사’가 마련한 만찬이었다. ‘용경협’사장과 한국관광공사 사장 그리고 중국의 중앙당 간부와 문화관련 인사들이 함께 참여했다. 참여인사와 직원들까지 1분 스피치를 통해 서로의 맘을 열어보였고, 언어는 달랐지만 서로 알고싶어하고 동경하는 부분들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생각해 보면 방문하기 전부터 촉박한 시간에 너무 많은 준비를 해주었다. 우리나라보다 중국은 휴일에 스케쥴을 잡는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첫 인상은 차갑지만 사귀면 사귈수록 정精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중국인인 것 같다. 모임이 끝나고 모처럼 숙소에 밤 11시 정도에 도착했으나 재단 정책에 대한 전체회의를 하고나니 역시 새벽 2시. 피곤이 비단금침이 되어 꿈나라로 빨려 들어갔다.
1차방문단 마지막 일정 넷째날 12월 27일
따산츠 798예술촌
마지막 날, 마지막 행선지는 ‘따산츠 798 예술촌’이다. 이곳은 예전에 필자가 개인적으로 전시기획을 한 바가 있어서 여러 번 방문했었는데 2년 사이 분위기가 또 많이 바뀌었다. 더 자유스럽게. ‘798’은 군부대의 명칭이었으나 그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고 첨엔 무기 공장을 작가들이 작업실로 활용하면서 하나 둘 모여들어 예술촌을 형성했고, 중국의 경제가 부흥함에 따라 신흥부호들이 문화에 눈을 돌리면서 정부가 정책적으로 문화예술구로 개발한 곳이다. 이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현대적 문화를 수용하고 있었고, 보다 자유스런 분위기와 다양한 형태의 갤러리와 카페, 서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단지 공장에 불과했던 건물들은 어느새 멋진 미술관이 돼 있었고, ‘사회주의’ 냄새가 풍겼던 거리들은 들뜬 문화의 거리로 탈바꿈해 있었다. 역시 문화란 억지로 만들어서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생성되어야 하는 것이리라.
1차방문단을 공항에 배웅하고 2차 방문단을 맞이하기 위해 휴식이 절실했다. 숙소에 들어와 확인해보니 27일자 중국연합뉴스와 중국공예가협회신문에 한국도자재단의 중국방문일정과 MOU체결내용이 보도되어 있었다. 이로써 중국과의 교류 거점을 확보하고자 중국을 방문한 1차 ‘한국도자문화교류 대표단’의 방문기를 정리하려한다. ‘이천’, ‘여주’세라피아(테마파크) 조성을 위한 벤치마킹 방문단의 2차 방문기는 다음호에 소개하려 한다.
1차 방문단 중국 북경 도착
재단과 중국민간문예가협회 MOU 체결
중국 민간문예가협회 전경
국제문화창의산업박람회 조직위 방문
중국방문 목적과 리버스 프로젝트 설명 후
한·중 도자문화 우호교류 협정
리버스프로젝트 설명 및 기념품 증정
음식점 전체가 박물관 형태인 화운박물관
화운박물관 전경
프랑식 건물이 도자의 세계 자방자로 변신됐다
자방자 전경
민룡도자관 입구
강이사장과 광홍은 서예대가의 즉석문화교류
따산츠 798 예술구 거리
갤러리 앞 설치조형 작품과 한 컷
필자 이홍원은 중앙대학교 박물관·미술관 학과 전시기획을 전공하고 갤러리사비나 큐레이터와 예술의전당 기획위원을 역임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재)세계도자기엑스포 전시
기획실 근무하고 2005년 (주)SHU커뮤니케이션즈 기획실장으로 ‘신비한 미생물전’, 2006년 자인아트하우스 전시기획 실장으로 북경 ‘문’갤러리의 ‘순진한 상상 전’등을 기획했다. 2007년에는 (주)인팩지씨에프 부장직을 맡아 국내 문화도시 및 테마파크 마스터플랜 수립했으며 2008년 도자진흥재단에 복귀 전시기획실 전시1팀장을 맡고 현재 재단 종합기획실 테마파크팀장으로 활동 중이다.
< 본 사이트에는 일부 자료가 생략되었습니다. 더 많은 자료는 월간세라믹스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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